이은하
세월도 음악도 젊은날로 ‘컴백’
“공백기는 정체성 찾은 값진 시간
‘내 음악’으로 라이브만 할거예요” 이은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밤차〉 〈봄비〉 〈아리송해〉 〈돌이키지마〉의 가수. 답답함을 뚫어주는 듯한 시원한 노래 솜씨로 이은하는 자기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허스키한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 열정적인 무대 매너가 바로 ‘이은하다운’ 모습이다. 이은하가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를 누빈 지 올해로 벌써 34년이다. 열세 살 나이에 〈임마중〉으로 데뷔했던 소녀는 마흔여섯 중진 가수가 됐다. 하지만 이은하는 늙지 않았다. 외모도, 목소리도, 노래도. 아니 더 젊어졌다. “사진 안 찍으면 안돼요? 지금 코가 좀 부었는데. 돼지코 소리를 듣는 게 콤플렉스여서 손을 좀 댔는데, 부작용이 생겨서 최근 보형물을 다 제거했거든. 부기가 안 빠져서 말이에요. 아무래도 전 생긴 대로 살아야 할 팔자인가 봐요. 피부도 안 좋고.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봐.” 50살을 바라보는 중견가수라고? 인터뷰 전만 해도 좀 ‘나이 들었으려니’ 했는데, 만나보니 ‘웃기시네’다. 가끔 골프 치고, 숨쉬기 운동 하는 게 전부라는데도 30대 중반 같다. 15년 만에 낸 새 음반 〈컴 백〉은 더 싱싱하다. 빵빵 울려대는 신나는 노래를 듣다보면 클럽에서 ‘부비부비’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다. ■ 하우스·트랜스 음악, 중견이 하면 주책 맞다고? =“음악 자체가 워낙 젊어서 ‘주책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거 아니에요. 유럽만 해도 중견가수들이 트랜스 음악을 하거든. 2005년 유럽여행 때 처음 접했는데, ‘딱 이거다’ 싶었어요. 고민을 많이 하긴 했어요. 데뷔 10년차가 넘으면 많은 가수들이 트로트로 전향을 하는 데다 젊은 애들한테 인기 끌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한동안 이은하에겐 되는 일이 없었다. 1992년 낸 음반 〈탈출〉의 성적이 기대 이하였고, 97년 야심차게 준비한 일본 진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직접 제작한 신인가수 음반의 결과도 참패였다. 그런 슬럼프 때문에 신곡을 내면서도 어떤 그릇에 담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백기는 분명 음악을 배우고 정체성도 찾아가는 값진 시간이었어요. 결론은 나를 좋아했던 분들이 바라는 건 달라지지 않고,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 더욱 열심히 하는 이은하의 모습이라는 거였죠.” 이번 음반은, 그의 말을 빌자면,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다. 일렉트로닉 음악에다 트랜스·하우스 음악은 물론 발라드, 재즈까지 담았다. 히트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새롭게 편곡해 실었다. 정통 하우스 리듬과 이은하의 독창적인 창법이 어우러진 타이틀곡 〈컴 백〉은 펑키하면서도 신난다. ■ 등떠밀려 한 가수…이제 내 길을 찾다 =이은하는 가요의 ‘가’자도 모르던 13살에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노래 잘하는 딸을 보곤 음악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자비로 음반을 내면서 가수가 됐다. “가수를 꿈꿨냐고요? 아니, 어린 애가 무슨 꿈이 있었겠어요. 오히려 74년 리틀엔젤스예술학교(현 선화예술학교)가 처음으로 신입생을 뽑을 때 떨어져 한이 맺혔어요.” 어린 나이로 데뷔한 탓에 가수로서의 욕심이나 정체성 같은 것은 없었다. “공부 안 해도 되고, 공주처럼 대접받으니까 좋았죠. 배고픈 것도 몰랐고. 제가 노래하면 좋아하는 사람들 보고 속으로 ‘왜들 난리야!’ 했어요.” 그러다 가수생활을 되짚어본 게 데뷔 20년 만인 92년이었다. “누가 가수 이은하를 만들어줬든, 노래가 내 인생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때부터 진짜 이은하의 음악을 하자고 했죠.” 한편으로는 그 결심이 두려움으로 다가와 예상치 못한 긴 공백기를 가졌다. “가수의 벽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더 무섭더라고요. 예전엔 인기에 연연해서 ‘이런 스타일로 부르면 성공할 거야’ 해서 안일하게 불렀다고 할 수도 있죠. 지금에야 내 스스로 창법과 스타일을 찾아 ‘아르 앤 브이(R&V)’라고 이름지었어요. ‘리듬 앤 보이스’란 뜻이에요. 단출한 리듬에 내 폭발적인 가창력을 입히면 마치 새로운 장르처럼 들리거든요.” 이은하에겐 음악과 무대가 남편이고 자식이다. “진짜로 당장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그동안은 사랑의 작대기가 서로 안 맞았고, 그러다 보니 노래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은 ‘대한민국 만인의 연인 이은하’에 만족해요. 결혼을 안 할 생각은 없어요.” 무대에 서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한동안 이은하는 참아야 했다. 그 갈증을 이번엔 확실히 풀 작정이다. “앞으로 라이브만 할 겁니다. 젊은 애들이 라이브를 너무 안하는데, 선배가수로 모범을 보여야죠. 내년 2~3월 중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열려고 해요. 아직 힘이 되거든요.”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내 음악’으로 라이브만 할거예요” 이은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밤차〉 〈봄비〉 〈아리송해〉 〈돌이키지마〉의 가수. 답답함을 뚫어주는 듯한 시원한 노래 솜씨로 이은하는 자기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허스키한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 열정적인 무대 매너가 바로 ‘이은하다운’ 모습이다. 이은하가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를 누빈 지 올해로 벌써 34년이다. 열세 살 나이에 〈임마중〉으로 데뷔했던 소녀는 마흔여섯 중진 가수가 됐다. 하지만 이은하는 늙지 않았다. 외모도, 목소리도, 노래도. 아니 더 젊어졌다. “사진 안 찍으면 안돼요? 지금 코가 좀 부었는데. 돼지코 소리를 듣는 게 콤플렉스여서 손을 좀 댔는데, 부작용이 생겨서 최근 보형물을 다 제거했거든. 부기가 안 빠져서 말이에요. 아무래도 전 생긴 대로 살아야 할 팔자인가 봐요. 피부도 안 좋고.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봐.” 50살을 바라보는 중견가수라고? 인터뷰 전만 해도 좀 ‘나이 들었으려니’ 했는데, 만나보니 ‘웃기시네’다. 가끔 골프 치고, 숨쉬기 운동 하는 게 전부라는데도 30대 중반 같다. 15년 만에 낸 새 음반 〈컴 백〉은 더 싱싱하다. 빵빵 울려대는 신나는 노래를 듣다보면 클럽에서 ‘부비부비’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다. ■ 하우스·트랜스 음악, 중견이 하면 주책 맞다고? =“음악 자체가 워낙 젊어서 ‘주책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거 아니에요. 유럽만 해도 중견가수들이 트랜스 음악을 하거든. 2005년 유럽여행 때 처음 접했는데, ‘딱 이거다’ 싶었어요. 고민을 많이 하긴 했어요. 데뷔 10년차가 넘으면 많은 가수들이 트로트로 전향을 하는 데다 젊은 애들한테 인기 끌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한동안 이은하에겐 되는 일이 없었다. 1992년 낸 음반 〈탈출〉의 성적이 기대 이하였고, 97년 야심차게 준비한 일본 진출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직접 제작한 신인가수 음반의 결과도 참패였다. 그런 슬럼프 때문에 신곡을 내면서도 어떤 그릇에 담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백기는 분명 음악을 배우고 정체성도 찾아가는 값진 시간이었어요. 결론은 나를 좋아했던 분들이 바라는 건 달라지지 않고,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 더욱 열심히 하는 이은하의 모습이라는 거였죠.” 이번 음반은, 그의 말을 빌자면,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다. 일렉트로닉 음악에다 트랜스·하우스 음악은 물론 발라드, 재즈까지 담았다. 히트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새롭게 편곡해 실었다. 정통 하우스 리듬과 이은하의 독창적인 창법이 어우러진 타이틀곡 〈컴 백〉은 펑키하면서도 신난다. ■ 등떠밀려 한 가수…이제 내 길을 찾다 =이은하는 가요의 ‘가’자도 모르던 13살에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노래 잘하는 딸을 보곤 음악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자비로 음반을 내면서 가수가 됐다. “가수를 꿈꿨냐고요? 아니, 어린 애가 무슨 꿈이 있었겠어요. 오히려 74년 리틀엔젤스예술학교(현 선화예술학교)가 처음으로 신입생을 뽑을 때 떨어져 한이 맺혔어요.” 어린 나이로 데뷔한 탓에 가수로서의 욕심이나 정체성 같은 것은 없었다. “공부 안 해도 되고, 공주처럼 대접받으니까 좋았죠. 배고픈 것도 몰랐고. 제가 노래하면 좋아하는 사람들 보고 속으로 ‘왜들 난리야!’ 했어요.” 그러다 가수생활을 되짚어본 게 데뷔 20년 만인 92년이었다. “누가 가수 이은하를 만들어줬든, 노래가 내 인생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때부터 진짜 이은하의 음악을 하자고 했죠.” 한편으로는 그 결심이 두려움으로 다가와 예상치 못한 긴 공백기를 가졌다. “가수의 벽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더 무섭더라고요. 예전엔 인기에 연연해서 ‘이런 스타일로 부르면 성공할 거야’ 해서 안일하게 불렀다고 할 수도 있죠. 지금에야 내 스스로 창법과 스타일을 찾아 ‘아르 앤 브이(R&V)’라고 이름지었어요. ‘리듬 앤 보이스’란 뜻이에요. 단출한 리듬에 내 폭발적인 가창력을 입히면 마치 새로운 장르처럼 들리거든요.” 이은하에겐 음악과 무대가 남편이고 자식이다. “진짜로 당장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그동안은 사랑의 작대기가 서로 안 맞았고, 그러다 보니 노래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은 ‘대한민국 만인의 연인 이은하’에 만족해요. 결혼을 안 할 생각은 없어요.” 무대에 서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한동안 이은하는 참아야 했다. 그 갈증을 이번엔 확실히 풀 작정이다. “앞으로 라이브만 할 겁니다. 젊은 애들이 라이브를 너무 안하는데, 선배가수로 모범을 보여야죠. 내년 2~3월 중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열려고 해요. 아직 힘이 되거든요.”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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