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부산 예인 문장원 선생
구순의 부산 예인 문장원 선생
젊은날 마당판·기방서 춤 익힌 뒤
일평생 동래야유·학춤 복원 힘써
‘시대의 춤꾼’들이 7일 ‘헌정 공연’ “동래민속관에서 집에 올 땐 운동 삼아 꼭 걸어 내려오는데 다리가 찌릿찌릿해. 무대에서 장승 되는 것 아닌지 몰라.” 최근 들어 천재동(탈), 신태형(장구), 이태진(북) 등 나이가 비슷한 부산의 예인 3명을 떠나보낸 문장원(91·사진) 선생은 공연을 앞두고 노쇠한 기력을 걱정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를 만난 지난달 30일은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으로 고 천재동 선생의 노제를 지내준 뒷날이다. 그런 그가 무대에 서서 15분 분량의 동래한량춤을 공연한다. ‘시나위 선율을 한 올 한 올 세며 걷는 아흔한 살의 한량’이 펼치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춤판이 7일 저녁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것이다. 공연 이름은 ‘노름마치뎐 긔 첫판※춤의 문장원’이다. “이번 춤만 추면 끝이야. 전통예술을 좋아하고 이 지역의 놀이를 이어갈 수 있게 제자하고 후배 수백명을 배출했으면 됐지 이제 더 무엇을 위해 춤을 추겠어. 이번 한 번만이고, 이사장도 넘겨줘야지.” 기획자 진옥섭씨가 15년 동안 예인과 명인을 찾아내 소개한 책 〈노름마치〉의 주인공들이 책 밖으로 나와 춤을 춘다. 무게중심을 문장원 선생에게 둔 헌정공연이다. 문 선생은 같이 놀던 동래예기 200여 명을 지금도 기억할 만큼 한량 중의 한량이었음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옛이야기를 쏟아내는 그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다. 젊은 날 마당판과 기방에서 익힌 춤을 즉흥적으로 구사해내는 몸놀림은 가히 압권이다. 15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 달 동안 입원한 뒤부터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등장한다. 지팡이를 내려놓고 시나위 반주를 휘감고 밀고 당기는 절묘한 솜씨가 그가 추는 춤의 멋이다.
“한과 멋과 흥이 전통예술의 기본이야. 보는 사람이 감동할 수 있도록 춤을 춰야 해. 풍류를 좋아하고, 많은 여성들을 알고, 전통을 살리고, 후배를 양성한 것이 내 인생의 모두지.” 그는 동래고의 전신인 동래고등보통학교에 두 차례 시험을 쳤으나 떨어진 뒤 열일곱 동갑내기인 천석꾼 사돈 최종욱과 어린 나이에 기방 출입을 하면서 춤과 인연을 맺었다. 동래가 춤의 고장인데다 여자처럼 가냘픈 체형이어서 그의 기방춤은 예기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일제 때 레코드사 외판사원으로 만주를 떠돌기도 하고 오사카제련소에서 노역하기도 한 그는 해방되던 해 9월 규슈에서 배를 타고 귀국한 뒤 이듬해 3·1절 기념으로 옛 명인들을 모아 동래야유(들놀음)판을 기획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복원될 때까지 동래야유는 한동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동래야유를 복원하기 위해 1965년 5월 동래민속연구회를 만들었다. 원양반 역은 그가 맡고 말뚝이는 30년 연상인 박덕업이 맡았다. 10월 덕수궁에서 열린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두 해 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그때부터 그는 일생을 이 단체와 함께했다. 69년 사단법인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를 발족했으며, 74년 금강공원 안에 동래민속관을 지었다. 동래학춤(72년), 동래지신밟기(77년), 동래고무(93년)가 잇따라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그는 83년 6월 국립극장이 주최한 제3회 ‘명무전’에 한진옥, 장금도와 함께 동래입춤(한량춤)을 선보였으며, 그해 12월 ‘명무 큰잔치’에 다시 초대되기도 했다.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2002년)에 이어, 이매방·강선영·장금도·김덕명·김수악 등과 함께한 ‘전무후무’(2005년) 공연 뒤 동래한량춤이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중앙과 지방의 예능보유자를 겸하게 됐다. 이번 공연은 채상묵이 이매방류 승무로 첫판을 열고 양성옥이 강선영류 태평무를 춘다. 그가 복원한 동래학춤이 마지막 동래예기 유금선의 구음 반주와 함께 공연되며, ‘명무전’과 ‘전무후무’에 함께 출연한 군산의 예기 장금도의 민살풀이춤이 이어진다. 이윤석의 덧뵈기춤과 하용부의 밀양북춤도 펼쳐진다. 그들의 스승인 고성의 조용배와 밀양의 하보경이 모두 동래에 머물면서 그와 풍류 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의 한량춤으로 공연이 절정에 이르면 젊은 춤꾼 김운태가 채상소고춤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02)3216-1185. 부산/이수윤 기자 syy@hani.co.kr, 사진 축제의땅 제공
일평생 동래야유·학춤 복원 힘써
‘시대의 춤꾼’들이 7일 ‘헌정 공연’ “동래민속관에서 집에 올 땐 운동 삼아 꼭 걸어 내려오는데 다리가 찌릿찌릿해. 무대에서 장승 되는 것 아닌지 몰라.” 최근 들어 천재동(탈), 신태형(장구), 이태진(북) 등 나이가 비슷한 부산의 예인 3명을 떠나보낸 문장원(91·사진) 선생은 공연을 앞두고 노쇠한 기력을 걱정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를 만난 지난달 30일은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으로 고 천재동 선생의 노제를 지내준 뒷날이다. 그런 그가 무대에 서서 15분 분량의 동래한량춤을 공연한다. ‘시나위 선율을 한 올 한 올 세며 걷는 아흔한 살의 한량’이 펼치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춤판이 7일 저녁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것이다. 공연 이름은 ‘노름마치뎐 긔 첫판※춤의 문장원’이다. “이번 춤만 추면 끝이야. 전통예술을 좋아하고 이 지역의 놀이를 이어갈 수 있게 제자하고 후배 수백명을 배출했으면 됐지 이제 더 무엇을 위해 춤을 추겠어. 이번 한 번만이고, 이사장도 넘겨줘야지.” 기획자 진옥섭씨가 15년 동안 예인과 명인을 찾아내 소개한 책 〈노름마치〉의 주인공들이 책 밖으로 나와 춤을 춘다. 무게중심을 문장원 선생에게 둔 헌정공연이다. 문 선생은 같이 놀던 동래예기 200여 명을 지금도 기억할 만큼 한량 중의 한량이었음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옛이야기를 쏟아내는 그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다. 젊은 날 마당판과 기방에서 익힌 춤을 즉흥적으로 구사해내는 몸놀림은 가히 압권이다. 15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 달 동안 입원한 뒤부터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등장한다. 지팡이를 내려놓고 시나위 반주를 휘감고 밀고 당기는 절묘한 솜씨가 그가 추는 춤의 멋이다.
“한과 멋과 흥이 전통예술의 기본이야. 보는 사람이 감동할 수 있도록 춤을 춰야 해. 풍류를 좋아하고, 많은 여성들을 알고, 전통을 살리고, 후배를 양성한 것이 내 인생의 모두지.” 그는 동래고의 전신인 동래고등보통학교에 두 차례 시험을 쳤으나 떨어진 뒤 열일곱 동갑내기인 천석꾼 사돈 최종욱과 어린 나이에 기방 출입을 하면서 춤과 인연을 맺었다. 동래가 춤의 고장인데다 여자처럼 가냘픈 체형이어서 그의 기방춤은 예기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일제 때 레코드사 외판사원으로 만주를 떠돌기도 하고 오사카제련소에서 노역하기도 한 그는 해방되던 해 9월 규슈에서 배를 타고 귀국한 뒤 이듬해 3·1절 기념으로 옛 명인들을 모아 동래야유(들놀음)판을 기획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복원될 때까지 동래야유는 한동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동래야유를 복원하기 위해 1965년 5월 동래민속연구회를 만들었다. 원양반 역은 그가 맡고 말뚝이는 30년 연상인 박덕업이 맡았다. 10월 덕수궁에서 열린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두 해 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그때부터 그는 일생을 이 단체와 함께했다. 69년 사단법인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를 발족했으며, 74년 금강공원 안에 동래민속관을 지었다. 동래학춤(72년), 동래지신밟기(77년), 동래고무(93년)가 잇따라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그는 83년 6월 국립극장이 주최한 제3회 ‘명무전’에 한진옥, 장금도와 함께 동래입춤(한량춤)을 선보였으며, 그해 12월 ‘명무 큰잔치’에 다시 초대되기도 했다.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2002년)에 이어, 이매방·강선영·장금도·김덕명·김수악 등과 함께한 ‘전무후무’(2005년) 공연 뒤 동래한량춤이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중앙과 지방의 예능보유자를 겸하게 됐다. 이번 공연은 채상묵이 이매방류 승무로 첫판을 열고 양성옥이 강선영류 태평무를 춘다. 그가 복원한 동래학춤이 마지막 동래예기 유금선의 구음 반주와 함께 공연되며, ‘명무전’과 ‘전무후무’에 함께 출연한 군산의 예기 장금도의 민살풀이춤이 이어진다. 이윤석의 덧뵈기춤과 하용부의 밀양북춤도 펼쳐진다. 그들의 스승인 고성의 조용배와 밀양의 하보경이 모두 동래에 머물면서 그와 풍류 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의 한량춤으로 공연이 절정에 이르면 젊은 춤꾼 김운태가 채상소고춤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02)3216-1185. 부산/이수윤 기자 syy@hani.co.kr, 사진 축제의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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