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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연극 ‘사건발생 1980’

등록 2007-08-02 17:55

연극 ‘사건발생 1980’
연극 ‘사건발생 1980’
일상 속 심연으로 시야 확장
최근 한국 연극의 한 경향은 과도한 연극성을 거부하고 동시대의 살아 있는 인간을 찾아 일상성으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주로 젊은 연극인들이 주도한 이 흐름을 통해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친근한 풍경과 존재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한길과 극단 청국장의 젊은 배우들은 출발부터 그런 경향을 보여준 젊은 연극인들이다. 퍼질러 앉는 방바닥이나 카페 같은 구체적인 삶의 공간, 의미 없지만 시간상으로는 우리 인생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시시한 수다와 술자리의 농담들, 또 무력한 백수의 삶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세계에 대한 비장한 명분이나 거대담론이 사라져버린 신세대 연극인의 등장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듯하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표면으로만 존재하겠는가. 수면을 흔들면 앙금이 떠오르듯 지리멸렬한 일상의 표면 아래에는 감정과 기억과 욕망이 엉켜 있고, 역설적이지만 일상의 리얼리티를 파고들면 혼란스런 무의식이라는 비일상과 만나기도 하는 법이다.

〈사건발생 1980〉은 그래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아직 완성도가 부족하지만, 김한길 특유의 소시민적 일상성만이 아니라 심연의 상처와 죄의식을 부각하면서 일상성의 연극이 무의식과 역사로 조심스럽게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무대는 한 가족의 가난한 현실공간을 중앙에 놓고, 포옹이라도 하듯 종이꽃과 한지로 장식한 단아한 과거 공간으로 그 현실을 감싸 안는다. 그러곤 지리멸렬한 일상과 싸움이 오고가는 도중에 한복을 입거나 피 흘리는 교복 차림의 여고생이 불청객처럼 과거의 공간을 휘젓고 다니며 객석을 긴장시키고, 퍼즐을 맞추듯 극의 흐름을 따라가노라면 자식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어머니의 슬픈 역사와 양아치 백수 아들의 쓰린 과거와 죄의식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사건발생 1980〉이라는 제목을 우리 사회의 무의식과 연결 지어 확대하자면, 제작진은 우리 모두의 비루하고 시시하고 다툼 많은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에 1980년 광주처럼 혹은 그 이전의 식민지 시대처럼 잊어버린 상처와 분노와 죄책감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의도가 울림을 갖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나 소소한 생기들은 빛나지만 큰 줄기에 있어서는 정곡을 찌르지 못한 채 인물들은 모두 너무 쉽게 화해하고, 충청도 사투리로 어머니가 인생의 내력을 늘어놓는 방식은 또 김한길의 스승인 오태석의 연극과 흡사해서 어리둥절할 정도다. 젊은 그들의 연극언어가 정체되지 않고 넓어지는 것은 좋으나 자신만의 독창성을 가질 수 있도록 좀더 숙성의 시간을 갖기 바란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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