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대목’ 맞은 미술관
오르세·모네 등 인기 전시
소음·인파로 감상 힘들어
소음·인파로 감상 힘들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어요.”
토요일인 지난 11일 오후 4시30분. 오르세미술관전이 열리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복도. 원생 40여명과 함께 방금 관람을 마친 부룩소미술관 김승연(41) 관장은 그렇게 말했다.
1, 2층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각각 20m 이상의 긴 줄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입장객을 조절하기 위해 워키토키를 든 안내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이날 관객은 모두 1만2000여명. 쾌적하게 작품을 감상할 인원인 5000~6000명의 두 배가 들었다. 초·중학생을 동반한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블록버스터’ 전시장은 모두 사정이 비슷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모네전 역시 1만2000명이 들어 가장 관객이 몰리는 오후 2~3시에는 창구 앞에 20여m의 줄이 생겼고 10여분의 시간차를 두고 입장시켜야 했다. 덕수궁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도 8천여명이 들어 줄서기는 마찬가지.
전시장 안은 시장처럼 복작였다. 오르세미술관전에서 ‘피리부는 소년’ ‘만종’ 등 유명한 작품은 5~6겹 인파의 뒤통수 너머로 쳐다보아야 했다. 또 전시장은 관객이 내는 소음으로 거대한 소음공명통으로 변했다. 관객들은 평시에는 소곤거려도 될 이야기를 큰 소리로 주고 받았다. 실제 전시장 안에서는 밖에서 온 전화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친구끼리 숙제를 하러 왔다는 황호승(목동 신서중 3)군은 “1시간 반 정도 걸렸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엔나미술관전) 장내 안내원 이진영(25·오르세미술관전)씨는 “관객이 몰리면 통제가 힘들다. 시끄럽고 혼잡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이들 전시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방학에다 주말이 겹쳤기 때문. 관객의 70%는 전시회를 다녀와 감상문을 쓰거나 팜플렛을 만들어보는 방학숙제를 해야 하는 초중등 학생과 학부모들. 중1, 초4 두 아들과 함께 천안에서 올라온 정옥순(38)씨는 주말 밖에 시간이 없었다면서 전철역과 거리를 고려해 덕수궁 전시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블록버스터가 붐비는 데 비해 다른 전시회는 한산한 편. 오르세전이 열리는 한가람미술관 1층의 ‘미술과 놀이-펀스터즈’는 어린이들을 미술에 친숙하게 만들기 위한 좋은 기획임에도 평일 1500명, 주말 2000명 정도 들었을 뿐이다. 또 프랑스 팝미술을 전시하는 소마미술관의 ‘누보팝’전은 이해하기 쉬운데도 평일 400명, 주말 600명의 관객이 들고 있을 뿐이다.
몇몇 대형 전시 위주로 관객이 몰리는 데는 배경이 있다. 이들 전시회가 인상파 전후까지 예쁘고 쉬운 그림인데다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을 하나둘 끼워넣어 학생들의 방학숙제를 겨냥하고 부모세대의 미술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들이 나온다. 동국대 오병욱 교수(미술학과)는 블록버스터의 존재는 일반인들이 미술에 무관심한 현실의 역설적 반증이라며 ‘찾아가는 전시회’는 장 드 뷔페가 하한선이라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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