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한국 뮤지컬의 최선 보여준 무대
한국에선 2005년에 초연되었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뮤지컬로 만든 〈맨 오브 라만차〉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것은 1965년이었다. 세상에, 1965년이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고릿적 옛날 아닌가. 그동안 〈캐츠〉를 비롯한 4대 뮤지컬※모두 80년대 작품이다※을 섭렵했고 최근의 작품마저 발 빠르게 공수하는 상황에서,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사십여년 전 작품을 또다시 선택한 것은 적절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고무적이다. 인간의 존엄함과 불굴의 의지라는 고색창연한(?) 예술적 주제를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로 파고든 〈맨 오브 라만차〉는 가벼운 뮤지컬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주고, 그것이 수천년간 이어온 공연 예술의 본령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알려준다.
작품을 구상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던 시절이었고, 작가 데일 와서먼이나 작곡가 미치 리는 그 미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룰 수 없는 꿈’(주제곡)을 늙은 몽상가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간절한 노래는 여전히 세상 도처에서 알 수 없는 싸움과 부도덕이 횡행하는 우리에게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절실한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러나 의도가 좋더라도 중요한 것은 형상화다. 지하 감옥에 수감된 작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극중극을 한다는 세련된 설정이나 탄탄한 짜임새, 에스파냐 악기를 가미한 이국적이면서도 풍성한 선율, 〈올슉업〉에 이어 코러스 하나에도 생기를 주는 데이비드 스완의 촘촘한 연출력과 과도한 장치 전환 없이 지하 감옥과 극중극의 변신을 노련하게 소화한 무대장치 등 〈맨 오브 라만차〉는 작품 본래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지금 한국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선보였다.
알돈자 역의 김선영이 전반부에서 고음 처리로 고전하는 눈치였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명성을 입증했고, 대부분 배우들, 심지어 작은 배역의 코러스까지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즐기는 눈치였다.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인형이 아니라 배우들의 무대를 본 느낌!
문제의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주인공엔 조승우와 정성화가 더블 캐스팅 되었다. 특히 정성화의 가창력이나 연기 변신이 눈부시다. 조승우의 연기는 매끈했지만 돈키호테의 존엄함을 소화하려면 연기력 이상의 삶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필요한 법이다. 도달할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경험, 무수히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와 품위와 여유 같은 것. 정성화의 〈맨 오브 라만차〉에 그것이 있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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