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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블로그] 비극,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등록 2007-08-17 19:10

<나비부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제공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나비부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제공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2007 수원화성국제연극제 <나비부인>
일시 2007년 8월 21일~ 8월 23일 매일8시
장소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공연장 연출/안무 José Besprosvany
단체 José Besprosvany
출연 Daniela Luca, Julio Arozarena or Jipe, Thierry Bastin, José Besprosvany
문의: 031-238-6496

서로 다른 것들의 오묘한 조화, 그 안에서 흐름을 놓치지 않고 밀도 있게 극을 끌고 가는, 탄탄하고 질긴 보이지 않는 끈. 다소 적나라한 표현을 빌자면, 이 공연은 분노할 만큼 흥미롭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이야기는 마리아 칼라스의 고혹적인 음색을 따라 흐르고, 미군 해군장교 핑커톤은 그에 맞춰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힙합 춤을 춘다. 무대 뒤쪽엔 미국의 권력을 암시하는 분절된 이미지들이 겹쳐지고 나비부인은 일본의 분라꾸 인형처럼 다른 무용수에 의해 조종된다. 한편 이 공연의 연출가이자 안무가는 무대 구석에 앉아 그들을 무심히 지켜보는가 하면, 심지어 종종 끼어들어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까지 한다. 2007 수원華城국제연극제의 공식초청작 <나비부인>은 이렇게 꽉 채워진 상상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다시 태어난 <나비부인>

2006년 아비뇽 축제에서 그득한 호평을 받은 조세 베스프로스바니(José Besprosvany)의 <나비부인>이 2007 수원華城국제연극제를 통해 아시아에서 초연된다고 한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현대 무용의 개혁가라 불리는 안무가 조세 베스프로스바니의 그간 실험들을 무대에서 재구성한 공연으로, 움직임과 음악, 텍스트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둔 그의 창작 목표가 작품 전반에 뚜렷하게 투영된다. 특히 100여 년 전 초연된 푸치니의 오페라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미국의 오만한 횡포를 비판하고, 그것을 상징적으로 무대 위에 펼쳐내는 그의 솜씨는 가히 탁월하다 할만하다.


<나비부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제공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나비부인> 수원화성국제연극제 제공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나비부인>은 미국의 한 해군장교와 어느 젊은 게이샤의 사랑 이야기다. ‘나비부인’은 일본의 귀족 출신이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어쩔 수 없이 게이샤가 되어 미국 해군장교 핑커톤과 결혼해 아이를 갖는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얼마 못 가 그는 나비부인과 아이를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 가 다시 결혼한다.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나비부인은 미국인 부인을 데리고 나타난 그를 보고, 실의와 모욕에 차 사무라이처럼 자살한다. 조세 베스프로스바니는 이 나비부인을 일본의 분라꾸 인형처럼 만들었다. 분라꾸는 일본의 전통 인형극으로 이에 사용되는 인형은 목, 몸체, 손, 발, 의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크기가 1m~1.5m 정도 되며 사람에 의해 조정되는 일종의 꼭두각시이다. 게이샤 인형처럼 움직이는 무용수와 그녀를 뒤에서 조정하는 또 다른 무용수, 그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순종적이고, 관능적이며, 숨 막힐 듯 아름답다. 그리고 시종일관 그 옆에서 엉뚱한 박자에 몸을 흔들거나 애써 그들의 춤을 따라하는 미군 장교 또한 묘하게 겉도는 것처럼 보여도 놀랍게도 결국은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핑커톤이 떠난 후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 나비부인의 연기는 애잔하고 애잔하여 가히 폐부를 찌른다. 그렇게, 그녀가 가슴에 칼을 꽂는 순간, 지켜보는 이들도 함께 칼을 맞는 듯 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느낌은 비단 한 남자의 사랑과 배신에서 오는 세속적인 것을 뛰어넘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미국의 이미지를 담아낸다. 조세 베스프로스바니가 만들어낸 <나비부인>의 미학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의 잘 짜인 얼개와 결코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듯 우연의 일치처럼 던져놓은 이야기.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오페라의 아리아와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섬세한 손짓 하나, 발짓 하나. 올 여름, <나비부인>과 함께 수원화성국제연극제가 우리에게 선사할 싸한 카타르시스를 기다린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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