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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해외 입양 ‘상처’에서 길어올린 예술혼

등록 2007-08-19 22:03수정 2007-08-19 22:17

사진 왼쪽부터 차례로 큐레이터 킴 스토커,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 케이트 허즈, 예트 혜진 모르텐슨, 마야 랑바트, 마야 웨이머, 이태호 감독.
사진 왼쪽부터 차례로 큐레이터 킴 스토커,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 케이트 허즈, 예트 혜진 모르텐슨, 마야 랑바트, 마야 웨이머, 이태호 감독.
경희대미술관 ‘입양’ 주제 전시회
“쌍둥이라 재수 없다. 당신은 광저우 시장에 버려져 뉴욕주 알바니의 새러 샤피로가 될 것이다.”

경희대미술관 ‘입양’ 주제 전시회
경희대미술관 ‘입양’ 주제 전시회
‘하나씩 가져가세요’라고 써있는 과자 접시. 잡히는 대로 쿠키를 집어 깨보니 안에서 깨알처럼 윗 글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재미로 운세를 점치는 ‘포춘쿠키’에 해외입양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쿠키에는 이밖에 “캘커타의 한 골목에 버려져 독일 시골에서 자랄 것”, “서류가 뒤바뀌어 텍사스 대신 스웨덴으로 입양될 것” 같은 운명이 들어 있다. 관객 참여를 유도해 해외입양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네 가지 운명>이란 작품이다. 작가는 어려서 미국으로 입양된 작가 마야 웨이머다.

정체성 고뇌와 심리적 상처 고스란히
정체성 고뇌와 심리적 상처 고스란히
■ 정체성 고뇌와 심리적 상처 고스란히= 경희대미술관에서 9월7일까지 열리는 ‘입양인 이방인; 경계인의 시선’ 전시회는 입양인 작가 25명이 ‘입양’을 주제로 하는 전시회다.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국가 정책에 따라 해외에 입양된 그들이 보여주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심리적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마야 웨이머는 또다른 비디오 작품에서 생모를 호텔에서 몰래 만나야 했던 경험을 호텔에서 바람피는 남녀의 모습과 병치시키며 입양인-생모 상봉의 괴기스러움을 부각시킨다. 시인으로 전시회에 참여한 덴마크 입양인 마야 리 랑바드는 생모, 양모, 입양아에게 각각 질문하는 ‘개념시’를 낭독했다. (생모에게) ‘저를 얼마나 자주 생각하세요? ㉮매일 ㉯이따금 ㉰전혀 안함. (양모에게) 입양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입양아에게) 당신은 국적이 어디라고 생각하나요? ㉮덴마크 ㉯한국 ㉰덴마크와 한국 ㉱덴마크도 한국도 아님.

입양인 예술 일등공신은 한국
입양인 예술 일등공신은 한국
■ 입양인 예술 일등공신은 한국 = 이번 전시회는 세계입양인대회에 맞춰 입양인 출신 큐레이터 킴 스토커(미국)가 기획하고 경희대 미대 이태호 객원교수가 감독을 맡아 빛을 봤다. 작가들은 모두 20대 후반~30대 중반. “한국전 직후의 해외입양 1세대와 달리 60~80년대에 입양된 이들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런 탓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과 어딘가에 소리치고 싶은 욕구가 예술적으로 승화되지 않았을까”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참여작가 25명 중 2명을 뺀 23명이 여성인 점도 특징. 가부장적인 한국에서 버려진 아이들 대부분이 여아였던 점을 정확히 반영한다.

미술판에서 문화다원주의가 강화되면서 ‘입양인 예술’도 한 분야를 차지하는 추세. 5년 전까지 아기 수출 1위를 지키다가 요즘은 4위인 한국이 입양인 예술의 든든한 토대를 만드는 데 공이 크다.

경계인의 슬픈 자화상
경계인의 슬픈 자화상
■ 경계인의 슬픈 자화상 = 생부모를 찾아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미국의 케이트 허스는 당시 썼던 ‘사람을 찾습니다’ 피켓 아래 시디 6장을 놓아 두었다. 시디는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자신의 말투, 먹어도 허기지는 현상, 자신의 길거리 행위예술 등의 내용을 엮었다. 입양인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표시란다. 관객들이 한장씩 가져가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적으로 보아주기를 원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왜소증의 로라 스완슨은 소파에 앉은 자신을 키 큰 백인이 내려다보는 사진을 찍었다. 또 외투를 뒤집어쓰고 복도에 혼자 서 있는 사진은 외톨이의 공포, 실패로 끝난 어울리려는 시도 등을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무관심한 국내 예술계에 던지는 충격파
무관심한 국내 예술계에 던지는 충격파
■ 무관심한 국내 예술계에 던지는 충격파 = 역설적이게도, 어려서 수출된 이들은 최신 예술 동향을 선물처럼 수입해 보여준다. 덴마크의 예트 혜진 모르텐슨은 다큐 형식의 픽션인 모큐멘터리 작품 <나의 증조부>를 선보인다. 화면을 둘로 쪼개 한쪽은 동양인인 작가가 증조부에 관해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선 백인인 증조부에 대한 사진과 기록 등을 보여준다. 입양, 가족, 국적, 인종주의와 그 와중에서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태호 감독은 사회적 문제에 미학적 기반을 둔 입양인 예술은 엔터테인먼트로 기울어있는 국내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고 말했다. 큐레이터 킴 스토커는 이 전시회가 해외입양의 체계적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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