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개조한 수다방(방송실)

그리고 만들고 지껄이고 말시키고, 도대체…
며칠 가나 했는데 웬걸…상인들도 ‘고것 참’
57호 닉 스프랫
미친 짓이다. 젊은 것들이 쇠락한 재래시장의 빈 점포에 자리를 틀어 석달 동안 뻔질나게 나다니며 그리고, 만들고, 지껄이고, 말시키고, 찍고…. 도대체 뭘? 왜? 무엇보다 어떤 이들인가? 문제의 장소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 2동 석수시장. 아스팔트로 포장된 널찍한 주차공간을 중심으로 빙 둘러 각종 생필품을 파는 점포들. 듣자니 1979년 안양 도심에서 옮겨온 ‘야채 도매시장’이다. 애초부터 제 기능을 잃고 재래시장으로 바뀌었다가 대형수퍼가 들어오면서 손님이 한가하다. 당연히 점포들이 빌 수밖에. ▶파리 날리는 점포 빌어 양색시와 양총각도 들어오고… 몇해 전 길 건너 2층에 ‘스톤앤워터’라는 문패를 달고 꿍꿍이를 하던 덥석부리 박씨(박찬응)가 ‘새로운 공동체운동을 실천하는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는 긴 명목으로 빈 점포 9곳을 빌렸다. 그러더니 양색시와 양총각을 포함해 젊은 것들이 잠입하더니 6월 초부터 지금껏 석달을 ‘난리 부르스’다.
▶무단 방치 라디오방송국?…빨간장갑에 마이크 잡고 소리 배달 57호 권승찬. 과일가게 옆에 탁자를 펼치고 간단한 방송도구를 늘어놓는다. 일종의 노점 소리가게다. 93.3㎒, 가청범위 500미터. 유치찬란 이름도 ‘무단방치라디오방송국’이다. 빨간 장갑에 찌릿찌릿 마이크 잡고 지나가는 생선가게 사장님을 세워 농담따먹기를 한다. 노인정, 국수집, 김밥집, 미용실, 생선가게. 찍찍이 라디오가 소리를 배달한다. ▶도자기로 햄버그 만들고 뉴욕서 재개발 현장 찍던 두 처자는… 117~118호 김선애와 타마라 구베르낫. 도자기로 못 먹는 햄버거를 만들던 김선애, 뉴욕에서 재개발 현장을 찍던 타마라. 죽이 맞은 두 처자가 사진이랑 비디오를 찍는데, 사랑방의 늙은 남정네, 우리마트의 홍보맨, 생선가게 떠벌이 사장, 꼬부랑 할매 등이다. 말을 시켜 석수시장의 작은 변화상을 기록한다나 어쩐다나.

117호 타마라 구베르낫
58호 채진숙


게임기를 메고 다니는 패트릭 잠봉
▶변두리, 미쳐 돌아가는 게 어디 여기뿐이랴 근데, 어디 미쳐 돌아가지 않는 게 있는가. 서울의 변두리 안양의 힘은 끊임없이 서울로 빨려들고, 사람차별과 함께 방치된 안양천은 거대 하수구로 썩고 병들어 사람들의 폐를 갉아먹었다. 그런 억압된 경계지대의 압력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 한떼의 무리가 발광을 하면서 문화적으로 승화되어 터진 것이 일련의 안양천 프로젝트. 물은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해 이제는 백로가 날아든다. 석수시장 프로젝트 역시 비슷한 맥락. 뒤틀린 채 겹겹이 쌓인 부조리한 현실은 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이르지 못하지 않겠는가. ▶도끼눈 치뜨고 보다 “하는 짓이 예뻐서…” 박씨가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하기에 며칠 그러다 말겠지 하던 상인들은 오뉴월 땡볕, 칠팔월 우기를 넘겨 이때껏 버티면서 언저리를 맴도는 이들에게 ‘고상한다’면서 말도 걸고 먹거리도 준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믿거니 편안한 표정들이다. 입주자 들쑤셔 큰소리 나지 않을까 도끼눈이던 석수시장 사장님도 “하는 짓이 이뻐 점포를 싸게 줬다”고 공치사다. ▶“씁쓸하고 기쁜 경험…유니크한 체험…그리워질 추억…” 뱀꼬릿말
57호 권승찬의 야외방송 모습.
그래서일 터다. 프로젝트는 씁쓸하고 기쁜 경험(진시우), 여타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유니크한 체험(닉), 돌아보면 그리워질 추억(타마라), 새로운 장르의 출발점(김선애), 오히려 짧은 기간(채진숙)이었다. 미친 짓을 기획한 박찬응씨로서는 비용 염출을 위한 노심초사가 끝나 시원섭섭할 터이다. 22일부터 26일까지 “그해 여름 너희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알고 있을” 주변상인들을 상대로 일종의 보고회인 오픈스튜디오 행사를 한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은 하나씩의 불씨를 안고 자기 공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안양/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석수시장 프로젝트팀 제공.
안양 석수시장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 점포 9개 임대한 국내외 작가 1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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