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죽은 시장터, 산 예술 한바탕 난리 부르스

등록 2007-08-24 14:07수정 2007-08-24 22:45

화장실을 개조한 수다방(방송실)
화장실을 개조한 수다방(방송실)
안양 석수시장 공공미술 현장 보고서
그리고 만들고 지껄이고 말시키고, 도대체…
며칠 가나 했는데 웬걸…상인들도 ‘고것 참’
57호 닉 스프랫
57호 닉 스프랫

미친 짓이다. 젊은 것들이 쇠락한 재래시장의 빈 점포에 자리를 틀어 석달 동안 뻔질나게 나다니며 그리고, 만들고, 지껄이고, 말시키고, 찍고…. 도대체 뭘? 왜? 무엇보다 어떤 이들인가?

문제의 장소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 2동 석수시장. 아스팔트로 포장된 널찍한 주차공간을 중심으로 빙 둘러 각종 생필품을 파는 점포들. 듣자니 1979년 안양 도심에서 옮겨온 ‘야채 도매시장’이다. 애초부터 제 기능을 잃고 재래시장으로 바뀌었다가 대형수퍼가 들어오면서 손님이 한가하다. 당연히 점포들이 빌 수밖에.

▶파리 날리는 점포 빌어 양색시와 양총각도 들어오고…

몇해 전 길 건너 2층에 ‘스톤앤워터’라는 문패를 달고 꿍꿍이를 하던 덥석부리 박씨(박찬응)가 ‘새로운 공동체운동을 실천하는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는 긴 명목으로 빈 점포 9곳을 빌렸다. 그러더니 양색시와 양총각을 포함해 젊은 것들이 잠입하더니 6월 초부터 지금껏 석달을 ‘난리 부르스’다.


▶무단 방치 라디오방송국?…빨간장갑에 마이크 잡고 소리 배달

57호 권승찬. 과일가게 옆에 탁자를 펼치고 간단한 방송도구를 늘어놓는다. 일종의 노점 소리가게다. 93.3㎒, 가청범위 500미터. 유치찬란 이름도 ‘무단방치라디오방송국’이다. 빨간 장갑에 찌릿찌릿 마이크 잡고 지나가는 생선가게 사장님을 세워 농담따먹기를 한다. 노인정, 국수집, 김밥집, 미용실, 생선가게. 찍찍이 라디오가 소리를 배달한다.

▶도자기로 햄버그 만들고 뉴욕서 재개발 현장 찍던 두 처자는…

117~118호 김선애와 타마라 구베르낫. 도자기로 못 먹는 햄버거를 만들던 김선애, 뉴욕에서 재개발 현장을 찍던 타마라. 죽이 맞은 두 처자가 사진이랑 비디오를 찍는데, 사랑방의 늙은 남정네, 우리마트의 홍보맨, 생선가게 떠벌이 사장, 꼬부랑 할매 등이다. 말을 시켜 석수시장의 작은 변화상을 기록한다나 어쩐다나.

김선애·타마라구베르낫 ‘석수시장’

[%%TAGSTORY1%%]

117호 타마라 구베르낫
117호 타마라 구베르낫

▶어슬렁거리다 아무한테나 마이크 들이대고 18번 졸라대

88호 전시우. 이 총각은 시장을 어슬렁어슬렁 다니더니 아무한테나 마이크를 들이대고 뭔 놈의 18번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10명이 꼬임에 넘어가 반주도 없이 맹숭맹숭 노래를 불렀다. 사연없는 노래 없다고, 18번에는 진한 과거가 녹아 있다나 어쩐다나.

58호 채진숙
58호 채진숙
▶먹지도 못할 ‘화중지병’ 놓고 떡집에 ‘그림의 떡’ 진열

58호 채진숙, 93호 이재헌. 이들은 환쟁이들인데, 채진숙은 옥상에서 본 시장, 자기가 머리를 밀던 날을 거무튀튀하게 그리고 먹지도 못하는 ‘화중지병’을 그려 떡집 진열대에 떡하니 진열했다. 이재헌은 시멘트, 벽돌, 아스팔트 틈의 잡초를 찍어대더니 역시 거무튀튀하게 그림판에 옮겼다. 이 사람들은 그나마 좀 낫다.

▶쓰임새 다양해 무척 ‘안양스러워’ 평상과 장판지에 꼴까닥

57호 닉 스프랏. 뉴질랜드에서 온 이 총각은 못하는 게 없는 디자이너라는데 평상과 장판지를 보고 꼴까닥 넘어갔다. 여기저기 평상은 구조가 간단하고 주변의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쓰임새가 무척 다양해 ‘안양스럽다’나. 또 생판 첨 보는 장판지는 적당한 두께에 흐느적거리는데다 방수. 총각은 장판지와 평상을 결합해 선반, 화분받침 등 가구를 만들어 사람들한테 공짜로 나누어 주었다. 그리곤 쓰임새가 궁금한지 자주 엿보고 있다.

▶게임기와 노래방에 뿅 가, 그걸 메고 다니는 ‘베를린 짬뽕’

91호 조은지, 89호 패트릭 잠봉. 조은지는 91호 전 주인이 ‘럭키’라는 개라면서 개를 찾아 나섰고, 베를린 짬뽕인지 잠봉인지는 게임기와 노래방에 뿅 가더니 그걸 메고 다닌다. 일종의 노점상인데, 자칭 ‘외계에서 온 게’라면서 석수시장의 정보를 캐야 한단다. 이만하면 미친 짓이 아닐런지.

조은지 ‘where is my lucky’

[%%TAGSTORY3%%]

패트릭 잠봉 ‘외계해의 안양탐색’

[%%TAGSTORY2%%]

게임기를 메고 다니는 패트릭 잠봉
게임기를 메고 다니는 패트릭 잠봉


▶변두리, 미쳐 돌아가는 게 어디 여기뿐이랴

근데, 어디 미쳐 돌아가지 않는 게 있는가. 서울의 변두리 안양의 힘은 끊임없이 서울로 빨려들고, 사람차별과 함께 방치된 안양천은 거대 하수구로 썩고 병들어 사람들의 폐를 갉아먹었다. 그런 억압된 경계지대의 압력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 한떼의 무리가 발광을 하면서 문화적으로 승화되어 터진 것이 일련의 안양천 프로젝트. 물은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해 이제는 백로가 날아든다. 석수시장 프로젝트 역시 비슷한 맥락. 뒤틀린 채 겹겹이 쌓인 부조리한 현실은 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이르지 못하지 않겠는가.

▶도끼눈 치뜨고 보다 “하는 짓이 예뻐서…”

박씨가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하기에 며칠 그러다 말겠지 하던 상인들은 오뉴월 땡볕, 칠팔월 우기를 넘겨 이때껏 버티면서 언저리를 맴도는 이들에게 ‘고상한다’면서 말도 걸고 먹거리도 준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믿거니 편안한 표정들이다. 입주자 들쑤셔 큰소리 나지 않을까 도끼눈이던 석수시장 사장님도 “하는 짓이 이뻐 점포를 싸게 줬다”고 공치사다.

▶“씁쓸하고 기쁜 경험…유니크한 체험…그리워질 추억…” 뱀꼬릿말

57호 권승찬의 야외방송 모습.
57호 권승찬의 야외방송 모습.

그래서일 터다. 프로젝트는 씁쓸하고 기쁜 경험(진시우), 여타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유니크한 체험(닉), 돌아보면 그리워질 추억(타마라), 새로운 장르의 출발점(김선애), 오히려 짧은 기간(채진숙)이었다. 미친 짓을 기획한 박찬응씨로서는 비용 염출을 위한 노심초사가 끝나 시원섭섭할 터이다.

22일부터 26일까지 “그해 여름 너희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알고 있을” 주변상인들을 상대로 일종의 보고회인 오픈스튜디오 행사를 한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은 하나씩의 불씨를 안고 자기 공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안양/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석수시장 프로젝트팀 제공.

안양 석수시장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 점포 9개 임대한 국내외 작가 10인.
안양 석수시장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 점포 9개 임대한 국내외 작가 10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