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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예술가의 이름으로, <안데르센 프로젝트> 로베르 르빠쥬

등록 2007-09-04 16:51

예술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예술가 그 자신의 삶은 과연 얼마나 풍요로울까. 안데르센은 그저 우리에게 사람들의 어린 감수성을 간질이는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던 동화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연 그의 삶은 어린이들의 그것처럼 티 없이 깨끗했을까, 혹은 그의 이야기처럼 맑고 영롱했을까. 비록 이 훌륭한 예술가가 세상을 떠난 지도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금 그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또 다른 예술가가 있었다. 지난 2005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덴마크 정부의 의뢰로 제작된 <안데르센 프로젝트 (The Andersen Project)>(9월 7일~9월 9일, LG아트센터)의 연출가 로베르 르빠쥬(Robert Lepage)가 애정과 연민어린 시선으로 그의 인생을 따라간다.

이야기는 186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방문하는 안데르센과 현재의 어느 날, 안데르센의 동화를 어린이용 오페라로 만들기 위해 파리를 찾은 한 예술가를 축으로 진행된다. 전혀 다른 복합적이고도 다층적인 성격의 여러 인물들은 2003년, 1인극 <달의 저 편>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이브 자끄(Yves Jacques)가 연기한다. 물론 이전의 그의 작품처럼 <안데르센 프로젝트> 역시 각종 특수효과들이 비현실적이고도 환상적인 무대를 빈틈없이 채운다. 특이한 것은 이 작품이 「드라이아드」와 「그림자」라는 두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겐 다소 낯설 뿐 아니라 상당히 음울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이다. 무대에는 외로움과 고독감, 온갖 성적 판타지들이 난무하고, 이 작품 안에서만은 안데르센의 천진스런 동화들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다. 로베르 르빠쥬는 천재 예술가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간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안데르센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의 접근을 시도한다.

어두운 이야기 「드라이아드」& 「그림자」


“「드라이아드」와 「그림자」는 유명한 동화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렸을 때 썼던 초기작들을 기억하죠. 저도 안데르센이 어두운 사람이라고 알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의 순수한 작품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 두 작품은 그가 나이가 들었을 때 쓴 작품들인데,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며 환상적이고, 제목처럼 매우 어둡습니다. 안데르센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가 가진 어두운 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죠.「그림자」는 자신의 어두움, 즉 그림자에게 삼켜 먹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이고, 「드라이아드」는 중심에 있고 싶은 희망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안데르센은 외로운 사람이었고, 어떠한 성적인 경험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가 성적인 것을 보고, 글로 쓰기도 했지만 그것은 고독한 혼자만의 경험들이었습니다. 「드라이아드」는 그런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나무의 정령인 젊은 여자가 파리라는 화려하고 엄청난 도시로 가고자 하는데, 이것은 사실 안데르센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그도 역시 파리로 가고 싶어했죠. 결국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안데르센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고독한 예술가 안데르센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안데르센이 아이들을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판타지 또한 썼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그와 연관 되어 있고 또 아이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그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마지막 한 달 동안, 사람들은 그의 동상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모형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안데르센이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읽어주는 모형이었습니다. 안데르센 주변에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안데르센은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내 동상 주변에 아이들이 있는 것이 싫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해요."라고 얘기했습니다. 충격적이었죠. 안데르센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면, 그가 아이들을 싫어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공연을 보기 전에 관객들은 단순히 그의 동화들이 아이들이나 청소년을 위한 내용이 아닌, 어두움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데르센은 굉장히 외롭고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이 공연에 안데르센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환상적인 성격과는 상반되는 인간 안데르센의 이러한 어두운 점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연극, 그 방식의 변화

“오늘날의 관객들은 영화가 어떤지, 비디오가 무엇인지, TV가 무엇인지, 인터넷이 무엇인지, 락 비디오가 어떤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멀티미디어나 영화 같은 것을 통해서요. 연극도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관객들은 연극을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극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연극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계속 공연장에 오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기술과 도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극장에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지요. 우리는 마땅히 다른 도구와 기술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저 사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젊은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돌렸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아시아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젊은 관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점점 관객들이 연극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나이 든 관객들의 반감을 사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웃음) 우리는 젊은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공연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락 밴드의 공연에 가는 사람들이 우리 공연에도 오는 것이죠. 이건 정말 중요한 사실이에요. 연극이 여전히 특별한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그는 이 작품을 1인극으로 만든 것에 대해 그것이 외롭고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안데르센의 고독한 성향을 무엇보다도 잘 표현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고백한다. 덴마크 정부의 의뢰를 받아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아니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동화작가의 어두운 내면을 무대 위에서 풀어내는 작업이 과히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그가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데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연극 형식에 그가 도입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은 언제나 논쟁거리가 되어왔으며 숱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본질을 잃지 않고 여전히 관객들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천재 예술가 로베르 르빠쥬. 먼 훗날, 다른 후대 예술가가 그려낼 로베르 르빠쥬는 또 어떤 모습일까 사뭇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로베르 르빠쥬와의 전화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인터뷰 진행에는 LG아트센터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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