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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나의 펜은 당신의 총보다 강하다

등록 2007-09-06 22:04수정 2007-09-06 22:08

한잘라
한잘라
팔레스타인 만평가 ‘나지 알 알리’ 회고전
나지 알 알리(1937~1987)를 아시나요? 당연히 모르시겠죠. 팔레스타인 만평가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들의 적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의 맹방인 한국인들이. 저주받은 민족, 그것도 20년 전에 죽은 인물을.

“돌멩이를 쥔 손.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돌 밭에 스민 피는 양분이 되어, 들꽃이 핀다. 남루한 밤송이 소년은 돌을 주우려는 듯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1948년 11살 소년의 가족은 갈릴리의 나자렛과 티베리아 사이에 있는 ‘알 샤자라’ 마을을 떠나 남부 레바논의 난민촌 ‘아인 알헬웨’로 옮겨갔습니다. 소년의 옛집에는 유대인(시온주의자)들이 대신 둥지를 틀었죠. 거지굴 같은 정착촌. 소년의 삶은 비참해,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레바논 정보기관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소년은 감옥의 벽에 정치적 표현을 담은 그림을 그렸어요. 그것이 시초였죠.

나지의 만평에 나오는 캐릭터인 ‘한잘라’(위)는 열 살쯤. 난민촌에서 흔히 보이는 거지 아이. 나지의 11살 무렵 자화상입니다. 작가는 한잘라를 두고 “내가 엇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항상 뒷짐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지역의 모든 부정적인 흐름을 거부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움츠러든 어깨의 여인
움츠러든 어깨의 여인
나지의 어머니는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방송을 듣고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여느 팔레스타인 여인들처럼 집 열쇠를 죽을 때까지 목에 걸고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나지의 만평 속에 퀭한 눈, 움츠러든 어깨의 여인(오른쪽)으로 등장합니다.

60년대 초반 난민촌을 떠난 나지는 쿠웨이트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알 탈리아 매거진〉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10년 뒤에는 베이루트로 돌아와 레바논에서 가장 힘센 신문인 〈알 샤피르〉에서 활동했죠.

“이스라엘군에게 포위됐던 때도, 폭격 속에서 숨죽이던 때도 나는 나의 펜과 마주 대했다. 나는 결코 공포, 실패,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고 항복하지도 않았다. 카툰 속에서 군인과 맞닥뜨렸고, 꽃, 희망, 총알 등을 함께 그렸다.” 나지의 회고담.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휘둘리는 기독교민병대는 자신들이 밀던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이 폭사하자 난민촌 두 곳을 봉쇄하고 9월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 동안 민간인 3천명을 도살했지요. 그동안 이스라엘군은 탱크로 에워싸고 있다가 학살이 끝나자 철수했습니다. 전세계의 눈은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컵에 쏠려 있었죠. 당시 만평 속 펜은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나지의 그림이 변모한 것은 이 무렵. 등장인물 한잘라는 뒷짐을 풀고 돌을 던지거나 사막에서 솟아오르는 팔레스타인 깃발을 보고 만세를 부르기도 합니다(아래).


한잘라
한잘라
나지는 난민촌을 떠나 결국 쿠웨이트를 거쳐 85년 영국 런던에 정착합니다. 그는 87년 7월22일 첼시의 이브스 거리에 있는 쿠웨이트신문 〈알 카바〉 사무실 앞에서 괴한의 총을 맞아 식물인간으로 한달 가량을 버티다 죽었습니다. 향년 51.

그의 만평은 이스라엘에 대항해 투쟁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초상화입니다. 그림은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아랍인들이 부당한 힘과 권력 아래 얼마나 핍박당하고 있는지를 온전하게 보여줍니다. 그런 탓에 나지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공동 암살 표적이었죠. 레바논, 쿠웨이트, 런던을 떠돌며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아랍세계의 진실을 전하던 그의 외침은 사후 20년이 흘러서 한국 땅에 울립니다. 5일부터 18일까지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 평화공간(02-735-5812). 그의 아들 칼이드 알 알리가 파일로 보관해 오던 것 가운데 40점 내외를 에이3 크기의 종이에 출력해 보여줍니다. 80년에서 그가 사망한 87년까지의 작품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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