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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맡아봐 스며있는 기억을

등록 2007-09-13 20:23

코리아나 미술관 ‘섈 위 스멜’전
코리아나 미술관 ‘섈 위 스멜’전
코리아나 미술관 ‘섈 위 스멜’전
냄새는 입자의 이동. 인간의 코에 전달돼 점막에 녹아드는 순간 느낌과 동시에 소멸한다. ‘푸세식’ 변소의 지독한 암모니아도 감각을 마비시켜 곧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은 기억과 뒤엉키면서 오랜 생명력을 갖는다.

냄새를 주제로 작품을 만든다면? 코리아나미술관에서 9월6일부터 11월3일까지 여는 ‘섈 위 스멜’(Shall We Smell)은 그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답이다.

우선 냄새 자체로 하는 법. 유현미와 박성원은 찌그러진 향수병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벽에는 냄새에 관한 단편적인 시구를 써놓았다. 그리고 ‘카오스’라는 이름의 냄새를 풀어놓았다.(‘판도라의 방’)

냄새 나는 오브제도 비교적 손쉬운 해결책. 김진란은 비누로 상여 색깔의 관을 만들었다.(‘메모리얼 오브젝트’) 사라짐과 소멸의 속성을 가진 비누 즉 냄새로 죽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에 위령의 노래와 ‘솝 메디테이션’이란 시구를 곁들여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후각은 그 자체로 형상화하기에는 미답의 감각이다. 따라서 시각과 청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춤추는 무용수의 흐릿한 영상(‘후-래링시안’), 향수병 속 여성의 신체 일부와 입자의 움직임(이혜림·사진), 드라이아이스를 뿜어냄(리경), 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박상현) 등이 그것. 결과물은 비디오다.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병원 출입이 잦으셨죠. 어릴 적 또래가 없던 나는 심심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병원에 가는 날을 기다렸어요. 특별한 곳을 가는 것 같았죠. 하지만 포르말린 냄새는 어린 내게도 절망감을 줬어요.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가셨죠.” 김세진은 거리에서 냄새에 얽인 인터뷰를 따고 이를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었다.(‘냄새 인터뷰’) 병원 냄새와 아버지의 죽음을 나란히 둠으로써 냄새가 기억의 매개체임을 시사한다.

젊은 작가들은 냄새로 상업화한 여성성에 대한 비판(이혜림), 구약의 속죄양과 신약의 예수 고난을 일체화하고(리경),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모티브를 얻어 조향사의 방을 꾸미는(손정은) 등 한바탕 냄새 잔치를 벌인다.

냄새 나는 박제 오브제(설치)와 파리처럼 윙윙거리는 잉카어 스펠링 비디오에서는 감각이 의미로 바뀌는 형이상학적 현장을 보여주는데 이르러서 절정을 보인다.(박상현)


냄새는 기억과 상처, 여성성과 욕망, 문학적 상상력, 종교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는 사실! 이 전시는 하류 감각으로 치부해온 후각이 포스트모던적인 미디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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