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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그림에서 소리가 나…나비가 ‘훨훨’ 벌이 ‘왱왱’

등록 2007-09-13 20:25수정 2007-09-13 20:31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화훼초충도를 모티브로 현대 작가 심현주가  만든 설치작품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화훼초충도를 모티브로 현대 작가 심현주가 만든 설치작품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소리-만남, 생각 그리고 추억’
신사임당 그림에선 자연의 떨림이
신라 옥적은 태평성대 기원 ‘삘리리’
전통 속 소리재생 현대작도 맞장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9월12일부터 11월5일까지 ‘소리-만남, 생각 그리고 추억’ 기획전을 연다.

소리 전시회? 무슨 소리가 어떻게 전시돼 있을까. 헤드폰을 끼면 풍경, 목탁, 방아, 다듬이 소리가 들릴까? 즉물적인 사람에게 이 기획전은 “당신, 생각 좀 하고 살지”라고 귀엣말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국립국악원 공동개최? 사물놀이·궁중음악·범패·민요 등 녹음된 각종 전통음악·북·꽹과리·징·나발·가야금·거문고 등 전통악기가 집적돼 있겠군, 하는 생각을 하는 이에게 이 전시회는 뒤통수를 톡톡 두드리면서 귀엣말을 한다. “당신, 머리가 녹슬었군.”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화훼초충도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화훼초충도
이 전시회는 소리를 만나다, 소리를 생각하다, 소리를 즐기다, 소리와 살다, 네 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분류가 그럴싸하지 않는가? 하지만 국립기관이면 그 수준이야 당연한 거지, 안 그래? 하고 첫발을 떼는 순간 안색이 노랗게 변한다. 얕잡아 봐온 그동안의 행적까지 고백하고 반성해야 할 지경이다. 무슨 설레발이냐고?

전시회는 당신이 소리를 알아?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것도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나비와 풀벌레가 날아다니는, 30대 초반의 심현주 작가의 설치작품으로. 일단 기부터 팍 죽이고!. 케케묵은 민속박물관이 아니란 말씀이야. 소리는 자연에서 나는 떨림. 그게 귀에 전달되면서 ‘소리’가 된다. 그러니까 소리는 인간이 있음으로써 존재한다. 그렇게 해서 존재하는 소리는 또 다른 인식을 낳지. 이쯤 해두고 다음 파트로 넘어가자고.

김홍도의 <무동>
김홍도의 <무동>
만파식적.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오고, 장마가 개고, 바람이 그친다는 피리. 〈삼국유사〉 원본에다 경주 김씨 가문에 전하는 옥피리를 전시하는 것쯤이야 센스. 비천상 탁본·악학궤범·대악후보·각종 아악기·바라·무당의 방울 등등은 당연한 거고.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둘러보고 나면 전시 기획자의 의도가 부각된다. 엉뚱하게도 옛사람들은 소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컨대 무덤에서 나온 흙방울이나 〈악학궤범〉에 나오는 방향, 아악기 중에 토제 호랑이상처럼 생긴 ‘어’. 먼저 흙방울은 ‘달그락’ 소리 외에 더 나올 게 없다. 열여섯 개의 쇳조각을 묶어놓은 ‘방향’ 역시 쳐봤자 탁한 ‘텅ㄱ’ 소리밖에 안 난다. ‘어’ 역시 등허리에 난 톱니를 채로 긁으면 ‘드르륵’ 소리밖에 없다. 문제는, 어는 서쪽에 놓는 악기로 등에는 톱니가 27개 있는데 9를 세 번 더한 숫자다. 채로 톱니를 세 번 긁어 연주하며 채는 9갈래로 나뉘어 있어 9의 수가 세 번 반복된다는 것. 옛 소리는 요즘 식으로 ‘띵까띵까’가 아니라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상 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예악이라는 것이다. 신라 옥적에서 소리가 나와봤자 그게 그거지. 하지만 그 소리에는 태평성대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는 거다.


19세기 다듬잇돌과 다듬잇방망이
19세기 다듬잇돌과 다듬잇방망이
그러고 보면 옛 악기 중에서 요즘식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가 많지 않다. 기껏해야 거문고와 가야금, 그리고 후대의 단순한 날라리 정도. 그럴듯해 보이는 편경이나 생황은 그 소리가 그 소리다. 북이나 바라, 목어 등은 둔탁한 소리를 내고 동종과 풍경이 조금 명징한 소리를 내지만 크고 작을 뿐이다.

우리의 귀는, 서양의 패스트푸드에 맛들인 혀처럼 서양의 멜로디에 익숙해 있는지도, 그것 외에는 소리도 음악도 아니라는 생각에 젖어 있는지도, 그런 귀로 옛 소리, 옛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이 기회에 귀를 씻어보지 않을 터인가? 라고 전시회는 말한다.

전시회의 동선은 신예작가 ‘뮌’의 ‘신환어행렬’ 앞에서 또 한번 주춤한다. 그림으로만 봐온 임금의 행차도를 동영상화한 작품이다. 이거, 민속박물관 전시회 맞아?

20세기 개량해금.
20세기 개량해금.
조선시대의 유교적 음악이 저잣거리에 나오면서 현실성을 띠게 된 것이 풍류. 음악은 모름지기 탐닉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것이었다. ‘월하취생도’, ‘선전관계회도’ 등을 보면 사대부가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행하던 의례적인 음악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17~18세기에 이르면 풍류는 더 실제적이고 기술적으로 구체화한다. 각종 악보가 만들어지고 거문고가 사랑방 필수품이 된다. 18세기 강포 류홍원의 양금보, 양양금이 적절한 예.

전시장이 막판에 이르면 추억의 물건들이 짜잔, 하고 나오면서 아주 편안해진다. 새삼 깨닫게 되는 케케묵음의 편안함! 맷돌·키·도리깨·탈곡기·아이스케키통·뻥튀기 기계 …. 재봉틀·전화기·라디오까지 현물은 물론 관련 사진을 누르면 소리까지 서비스한다. 그리고 출구 앞에서 센스 있는 관객한테 제공하는 성정환 작가의 ‘승무’. 배부르게 먹은 다음의 아이스크림 같은 작품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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