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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블로그] 꽃바람에도, 눈바람에도 함께 가자!

등록 2007-09-14 17:46

극단 신기루 만화경 <코끼리와 나>
일시 : 2007년 9월 21일~10월 21일 평일 8시, 토 4시 7시, 일4시
월, 9월 27일 쉼, 9월 24일 ~ 9월 26일, 10월3일 4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작,연출 : 이해제
움직임 연출 : 이두성
출연 : 오달수, 정찬우, 최명수, 박수영, 정재성 외
문의 : 1544-5955

내 인생의 코끼리는 누구일까. 혹은 나는 누구의 인생에서 코끼리가 될 수 있을까. 뜬금없이 코끼리 타령을 하는 이유는 소도둑 쌍달과 코끼리 흑산의 모습이 부러워서랄까, 연출 이해제와 배우 오달수의 관계가 샘이 나서랄까.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신작 <코끼리와 나>는 조선 태종 11년, 이 땅에 최초로 들어 온 코끼리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가는 두 존재를 그린다. 도대체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코끼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는 것이 무엇이건데?

쌍달이 흑산을 만났을 때


이야기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의 대장경을 얻고자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보낸 코끼리 한 마리. 난생 처음 코끼리라는 해괴한 동물을 만난 조선의 왕궁은 아수라장이 된다. 날마다 콩 4두(斗) 씩을 먹어치우며 괴수 같이 포효하는 코끼리는 도무지 손 쓸 방도가 없이 궁 안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에 두 나라 간의 화평을 위해 예물로 받은 코끼리를 보살필만한 사람을 찾으라는 특명이 내려지고, 어느 소 싸움판에서 약삭빠른 소도둑 쌍달이 캐스팅되는 영광(?)을 안는데.

하지만 아무리 쇠귀에 독경을 읽어 절간에도 몇 마리 보냈다는 쌍달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쌍달은 지레 겁을 먹고, 본격적으로 코끼리를 대면하기도 전에 제사상부터 받고 보는데. 그렇게, 함께 눈을 맞추며, 술동이를 비우는 것으로 쌍달과 코끼리 흑산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질 여유도 없이 흑산은 공조전서(工曹典書) ‘이우’를 밟아 죽여, 황당무계하게도! 코끼리의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결국 둘은 외딴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말이 유배지, 이 둘이 그 고즈넉한 바닷가에서 서로를 토닥토닥해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법. 어떻게든 조선 왕실의 실수를 빌미 삼아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일본은, 그들에게 흑산이를 돌봐줄 의녀로 가장한 ‘옥화’를 따라 붙인다. 소리 없이 엄습한 비극은 이렇게 시작돼, 그림자처럼 쌍달을 따르던 ‘목이’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제, 흑산이도 위기에 처하고, 나라마저 위기에 처하게 될 참인데. 쌍달은 과연 흑산이를 구하고, 또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기다려지는 이유

이야기는 코끼리 한 마리가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가지를 쳐가지만, 사실 이 연극은 ‘코끼리와 나라’의 관계보다는 ‘코끼리와 나’의 관계를 애면글면 쫓아간다. 그렇기에 ‘나’ 쌍달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코끼리 ‘흑산’을 대하는지를 꿰뚫어 보는 일이 극을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심지어 흑산의 감정을 유추해 보는 일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데, 그의 감정에 따라 쌍달의 성격이나 감정, 행동양식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쌍달과 흑산은 어떻게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인물 분석을 위해 사소한 단서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연습실에 모인 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과정이 사뭇 재미있다. 소도둑 쌍달이 처음에 바늘 도둑질을 시작한 이유는 손을 따기 위해서였을까, 이불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께 효도를 하기 위해서였을까.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같아도 그 모든 것들이 인물의 성격에 당위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고개를 쳐든다. 과연, 스무 명이나 되는 단원들이 툭툭 던져놓는 설정들은 서로 간의 합의를 거쳐 그대로 인물의 형상화에 반영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등장하게 될 코끼리 흑산이야말로 이 연극을 무대에서 만날 날을 손꼽게 하는 숨겨진 보물이다. 단순히 코끼리를 의인화 하는 차원을 넘어, 쌍달과 가까이 교감하고 그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흑산을 맞이하기 위해, 그 녹록치 않은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 갖가지 상상력이 동원된다. 음향, 소품, 의상, 무대, 조명 할 것 없이 모든 스태프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배우들 역시 우리 장단과 움직임을 익히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연극이기에 가능한 무한한 표현의 세계, 실제 코끼리보다 더 코끼리다운, 어쩌면 사람보다도 더 사람다운 흑산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은 즐거운 고문이다.

내 인생의 코끼리 연출가 이해제 & 배우 오달수

파란만장 쌍달과 흑산의 이야기는 <코끼리와 나>의 연출가이자 작가인 이해제가 배우 오달수만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오달수는 쌍달 역이 한편 영광스러우면서도 부담이라고 고백하지만, 16년간 영글고 영근 두 사람의 시간은 이제 이 작품을 만나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셈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워볼까 고민했다던 오달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를 잘 돌봐줄 자신이 없어 결국은 충동을 눌렀다고 하는데, 바로 그것이 애정이자 진정한 관계맺음이 아닐까 하고 얘기한다. 연출 이해제와 배우 오달수 사이에는 바로 그러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애정과 믿음이 있었다.

“연습하면서 달수 형이 16년 만에 보여 준 춤사위는 상당히 감동스러웠어요. 어릴 적 무대에서 봤던 모습들을 다시 보면서 여전히 몸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흑산과 쌍달의 관계는 이미 짐승과 사람의 사랑을 뛰어넘어, 서로 교감하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는 경지라고 할까요. 하나의 존재로서 의미를 지니는 거죠. 다른 사람이 존재해야 자기가 존재하는 거잖아요. 코끼리는 그런 의미에요.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이 코끼리잖아요. 사실 전달하고자 했던 걸로 따지면, ‘고래와 나’ 라고 했어도 상관없었을 거에요. 그 커다란, 감당하지 못할 존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거죠. 타인에 대해서 혹은, 우린 자기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결국은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와 네가 합일치 되어가는 과정을 한 번 보자는 거에요.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을 통해서 관객들이 소박한 의미의 세상을 만났으면 싶어요.” - 연출가 이해제

“배우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대본을 봤을 때, 내가 눈물이 나느냐 안 나느냐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이 대본 같은 경우 첫 리딩할 때 목이 메더라구요. 그냥 국어 책 읽듯이 감정을 빼고 읽는데도, 울컥하는 게 있었어요. 그렇게 감동을 받고 시작했는데, 흑산이와 쌍달의 관계는 가면 갈수록, 쌓이는 게 있어요. 결국에는 그 쌓이고 쌓인 것들을 밟고 뛰어넘는 거죠. 이 작품은 ‘나와 코끼리’가 아니고 ‘코끼리와 나’에요. 나는 차치하고서라도 코끼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해제씨가 이야기해서 그게 마음에 탁 들어왔는데, 현실에서 지금 나, 혹은 이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코끼리는 무슨 의미인가, 고민해 봐야한다는 거죠. 무엇보다도 제가 대본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어떻게 관객들한테 고스란히 전달해 줄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이에요. 제가 느낀 만큼, 찾은 만큼, 관객 분들이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요.” - 배우 오달수

지난 봄 관객들을 만났던 <다리퐁 모단걸>처럼 <코끼리와 나> 역시 영화 시놉시스가 먼저 씌어졌고 지금도 영화제작을 위한 과정이 한참 진행 중이다. 영화 장르의 특성 상 나타날 수밖에 없는 태생적으로 잦은 장면전환들은 오히려 대극장 ‘용’의 무대를 만나면서 거의 해결되었다고 하는데, 30장으로 이루어진 희곡을 단 세 번 정도의 암전만으로 처리할거라고 하니 그 발상의 전환도 내심 기대가 된다. 무대 역시 수묵화 풍경처럼 잔잔하게, 너무 많이 채워 넣지 않은 모습으로 선보일 텐데, 오랜만에 연극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리는 마음이 조급하다.

들어오는 단원은 많은데 나가는 단원은 하나도 없다는 극단 신기루 만화경은 탄탄한 연출진과 작가진, 그리고 끼 많은 배우들이 뭉친 말 그대로, ‘만화경’ 같은 모습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와 <다리퐁 모단걸>, 그리고 <코끼리와 나>까지 왕성한 ‘연극욕’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한 여기저기 멍석을 깔아서 그들만의 내공을 기르는 일이라고. 그렇다보니 자연히 다양한 가능성들이 발현되는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색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함께 모여 일을 도모하고 저지르다보면 그들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득 우스개 소리로 오달수가 던진 한마디처럼 그것이 어쩌면 ‘보호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환경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꿋꿋이 연극을 지키려는 그들만의 보호색, 그 고마운 보호색이 만들어낼 또 한 편의 감동, <코끼리와 나>를 기다린다.

글_김슬기
사진_극장 용 제공 & 이성진(icrazyguitar@hanmail.net)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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