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대씨
‘붓질 반세기’ 기념화집 내고 전시하는 박영대씨
“땅을 그대로 뒀다면 수십 억원은 될 겁니다. 땅을 팔아서 보리밭 그림들만 남았지만 후회 없습니다.”
‘보리밭 작가’ 박영대(66·사진)씨가 붓질 50년을 기념해 화집을 내고 10월2일까지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의 화력 50년은 보리농사를 시작한 때부터 친다. 고교 졸업 뒤 늙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6~7년을 ‘피 터지게’ 농사를 지었다. 보리는 물론 콩, 벼 등 청주 교외 미호천변(청원군 강내면)에서 될 법한 작물은 다 심고 거뒀다. 그러다 독학으로 교사 검정시험을 쳐 모교인 대성고교에서 미술교사로 10여년 교편을 잡았다. 상업고교인 탓에 수채화, 유화, 디자인 등 몽땅 다 가르쳤다. 그런 틈틈이 대학원에 적을 두고 조복순, 박생광 선생한테 사사했다. 1974년 국전에 청맥을 그린 ‘맥파’로 입선하면서 ‘보리밭 작가’가 됐다.
“보리는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보릿고개를 넘어 질기게 살아온 우리네 삶을 말하기도 하고요.”
보리의 생명력 만큼이나 그의 보리사랑은 질기고 질겨 지금껏 반세기다. 물론 중간에 나무, 논밭 시리즈 등으로 ‘외도’를 했지만 따지고 보면 보리의 변주다. 보리밭에서 시작한 보리사랑은 보리를 말리는 맷방석으로 넘어갔다가 80년대 들면서 해체 과정을 거쳐 추상으로 건너뛴다. ‘태소’, ‘율-생명’ 시리즈가 그것. 보리와 봄볕과 종달새 이전의 원초적인 생명을 함유한 씨앗의 거대한 율동. 그것은 기의 흐름이 되어 태극 또는 물결문양으로 꿈틀거린다. 하지만 보리밭 이랑에 물결진 봄바람 자국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고졸 뒤 가난 이기려 ‘피 터지게 보리농사’
독학으로 국전 입선…30여년 ‘보리밭 작가’
16개국 순회전시 뒤 추상으로 “심상 표현”
추상작업은 교직을 그만두고 81년 뉴욕개인전을 연 뒤 16개 나라를 돌고나서부터. ‘사실화로는 세계무대에 설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탓에 끌어줄 선배도, 붙잡을 연줄도 없어 국전 특선이나 초대작가는 꿈도 못꿨다. 돌이켜보면 그게 되레 약이었다. 남들보다 더 지독하게 공부하고 그렸다. 호응은 국외서 더 컸다. 91년 17회 도쿄전에서 ‘나무 시리즈’로 그랑프리를 받았고 2006년, 2007년에는 일본 ‘살롱 뒤 블랑전’에서 회장상, 대상을 잇따라 받았다. 96년 영국의 로고스갤러리 초대전은 호응이 좋아 한 달을 연장전시했고 대영박물관에서 한 점을 구입해 한국관에 소장·전시하고 있다.
배움은 끝이 없어 95년부터 2002년까지 인사동 부근에 작업실을 두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가까운 교보문고를 도서실 삼아 공부했다. 그동안 보리는 그의 삶이 되었고 심상의 표현이 되었다. 17년을 그러다가 ‘하산’해서 고향인 청원에 가보니 행정수도다 뭐다 해서 땅값이 풀쩍 뛰어 있었다. 그동안 보리밭은 가난한 화가의 그림재료와 생활비 명목으로 야금야금 떼어내져 그의 그림 속으로 옮겨가고 없었다. 허전하지는 않을까?
“고향의 보리밭은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제 그림을 좋아하는 관객의 마음 속에 있기도 하고요.”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독학으로 국전 입선…30여년 ‘보리밭 작가’
16개국 순회전시 뒤 추상으로 “심상 표현”
박영대씨의 보리밭 주제 작품들. ‘맥파’ ‘황맥’ ‘율-생명’(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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