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쿠엥+로비스 카푸토
‘디자인 메이드 2007-호텔이다’ 전
카툰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라는 표식은 ‘불 켜진 전구’다. ‘호텔이다/호텔異多/It's Hotel’이라는 부제가 붙은 ‘디자인 메이드 2007’ 전시회장을 카툰식으로 보면 무척 밝다. 작품 하나하나의 아이디어가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22일까지 여는 ‘디자인 메이드 2007’은 스위스,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터키, 캐나다, 일본 등 15개 팀, 국내의 26개 팀 등 주목받는 디자인팀 41개 팀이 모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이 가운데 6개 팀은 새내기다. 2005년 재활용, 2006년 라인을 주제로 한 바 있는 디자인메이드의 올해 주제는 호텔. 매년 다른 주제이지만 △젊은 디자이너 발굴·양성 △해외 동향 소개 △디자인에 대한 인식 확산이란 목표는 매한가지다.
디자인메이드 전시장은 호텔처럼 꾸몄다. 입장권 대신 ‘방해하세요’ 종이걸개를 나눠주고, 네 개로 나눠진 전시공간은 각각 싱글룸, 더블룸, 비지니스룸, 스위트룸이란 이름을 달았다. 겉모양만 호텔스런 게 아니라 작품들 역시 호텔용품이거나 그것과 관련된 것들이다, 라고 하면 아귀가 맞겠으나 딱잘라 그렇다 하기는 어렵다. 호텔이라는 게 본디 ‘먹고 싸고 자고 입고’ 하는 곳으로 좀 고급스럽다뿐 일상과 다름없는 일들을 하는 곳이어서 딱히 호텔용품이라고 선을 긋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고급스럽다’에 주목하면 이 전시회가 노리는 게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국내외 41개 디자인팀 모여 ‘호텔’ 주제로 일상 전복
기발한 가구와 소품들이 ‘디자인=본질 재해석’ 울림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면 호텔 로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헹크 뮐더의 대형 꽃꽂이가 분위기를 띄운다.
오른쪽 첫째 방이 싱글룸. “외로우세요?”라는 핑크빛 물음으로 인한 기대는 실망이다. 자아성찰, 감정표현 등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진중한’ 작품들이기 때문. 우선 호텔의 상징 침대. 싱글침대의 이불은 펴서 읽다가 지치면 덮고 잘 수 있는 네 쪽짜리 책. 빨간 표지를 넘기면 안데르센의 ‘백조가 된 왕자’ 동화. 오빠를 마법에서 풀려나게 하기 위해 무덤가 가시덤불로 옷을 짜는 막내 여동생의 이야기다.(티에고 다 폰세카)
마주 앉으면 책으로 변해 자신의 얼굴이 박힌 페이지를 넘겨주는 신기한 책상(이주영), 둘러쓰면 자기 눈을 보고 자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스크(원소희), 궁둥이를 들이밀면 사이즈에 맞게 오그라드는 소파(바스 콜스) 등 이 방은 온통 외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다음 방은 더블룸. 행복은 함께라야 오는 걸까. “행복한가요?”라고 묻는다. 함께는 사람 대 사람뿐 아니라 사람 대 사물까지도 포괄한다. 죽부인처럼 생긴 기다란 베개. 양끝 또는 좌우 짧은 진짜 베개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 또는 기분에 따라 베개의 위치를 바꿔 달아 나란히 또는 거꾸로 잘 수 있다.(데브라 클라크) 뒷다리만 덩그러니 놓인 명품 의자. 하지만 앞다리와 등판이 그려진 옷을 입고 뒷다리에 궁둥이를 걸치면 의자가 완성된다. 의자는 인간에게 깔려 봉사하는 세상에서 인간과 의자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슈타우파허 벤즈) 여기서 퀴즈 하나. 의자의 일부가 프린트된 옷은 가구일까 패션일까. 퀴즈 둘. 딸깍 외에 전등을 켜는 방법에는 몇 가지나 있을까.
바쁘신가요? 비지니스룸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보도록 한다. 룸 속에 또 하나의 축소된 호텔. 리스트에서 방을 선택하면 그 방을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골판지로. 그 방에 누우면 흐릿한 조명 속에 최소한의 기분을 낼 수 있다. 실제로는 상반신용, 하반신은 밖으로 드러난다. 마음먹기에 따라 일회용 골판지 윗도리 방도 별 다섯 호텔이라는 현인같은 메시지다.(사라 쿠엥+로비스 카푸토) 접으면 핸드백 크기 펼치면 라운지체어 또는 침대받침(몰로 디자인), 시간을 조정하면 과거의 자신을 보여주는 타임머신(정재경), 시-분-초침의 축을 자유롭게 배치한 시계(이미성) 등은 심리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시공간 자유를 말한다.
스위트룸은 실제와 가상이 뒤섞여 꿈꾸는 공간. 테이블 위에 꽂힌 숟가락, 빗, 국자, 라이터 등. 길다란 그림자를 거느린 이것들을 건드리면 그 속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와 사라진다. 여덟 개의 기둥 역시 그 옆을 지나가면 코끼리, 뱀 그림자가 튀어나온다.(모토시 치카모리+고쿄 쿠노) 90도로 꺾인 코너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글루건 그림이 멀뚱하던 벽에 화면이 투사되면 호텔에 투숙한 록밴드가 등장한다. 스테레오음향과 함께 실물과 애니메이션, 현실과 가상 등 몇개의 대립항이 공존한다.(강현선+김현정) 거울과 영상을 중첩시키면서 만들어낸 가상공간으로 이동하면 폭포수를 맞고 여인과 데이트를 할 수도 있다.(일렉트로닉 섀도)
돌아나오면 ‘고급스럽다’의 답이 떠오른다. 디자인이 본질을 재해석하게 한다는 사실. 혹은 우리가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제로는 아닐 수 있다는 성찰. 30대 초 초롱초롱한 작가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사로는 무미건조하지만 실제 작품들은 “오호~” 탄성이 나온다. 무엇보다 제각각 톡톡 튀는 작품들을 달래어 조화롭게 구성해낸 기획자의 솜씨가 인상적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기발한 가구와 소품들이 ‘디자인=본질 재해석’ 울림
바스 콜스
마주 앉으면 책으로 변해 자신의 얼굴이 박힌 페이지를 넘겨주는 신기한 책상(이주영), 둘러쓰면 자기 눈을 보고 자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스크(원소희), 궁둥이를 들이밀면 사이즈에 맞게 오그라드는 소파(바스 콜스) 등 이 방은 온통 외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위부터 티에고 다 폰세카, 데브라 클라크, 몰로 디자인, 모토시 치카모리+고쿄 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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