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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진지한 철학만이 깊이를 담아낼 수 있다

등록 2007-10-09 13:52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터키국립극장 <살로메>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터키국립극장 <살로메>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터키국립극장 <살로메>
연출가 뮤게 규르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자 그의 목을 요구한 여인 살로메.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그녀를 무대 위에 춤추게 했다. 그 아름답고도 섬뜩한 춤이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초청작으로 한국 무대를 찾은 터키 국립극장의 <살로메>(10월10일~10월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를 만나 춤, 그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의 탐욕스런 본능을 자극한다. 심오하고 날카로운 재해석의 손길이 번뜩이는 작품, 터키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이자 연출가인 뮤게 규르만(Müge Gürman)의 이야기엔 숨막히는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살로메’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오랜 세월 이 여인을 주제로 한 숱한 예술 작품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는 작가의 생애가 투영된 작품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작가의 비극적인 삶을 돌아보면, 자기 고백적인 내면이 반영된 이야기라는 점에도 수긍이 갑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는 어떤 작품이며,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살로메>의 주제는 매우 보편적인 인간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의 인생을 반영하죠. 그렇지만 보다 인간의 본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변치 않는 정치적 문제들… 이것들은 현재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작품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만지고 사용하는 아름다움, 파괴하거나 파괴당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아름다움, 고차원적인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면 삶의 신비함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말은 제가 가진 관점의 핵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시대 뿐 아니라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도 부각시키는 말이죠. 이 작품에서 제가 매력을 느낀 것은 그의 접근방법, 시적인 깊이, 그리고 첫눈에는 무대화하기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만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소위 그가 말하는 ‘순수한’ 연극,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점들은 불확실성과 신비로움을 가지고 상상력의 범주를 최대한 넓히게 합니다. ‘매력’은 살로메가 사용하는 가장 주된 단어인데, 이것은 이 연극의 핵심뿐 아니라 이 연극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반영합니다.


<살로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다른 이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만 눈이 멀어있습니다. 고집스럽고 탐욕스러운 그들의 외침은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오고, 계속되는 복수를 불러와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비극이 되고 맙니다. 비록 이 희곡은 100년이 훨씬 지난 과거에 씌어졌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본성의 은밀한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아무도 다른 이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탐욕에만 매달립니다. 지금의 세상과 같죠. 제가 이 작품에서 생각하는 또 다른 주제가 일종의 현혹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탐욕스런 열정, 왕권, 정치, 음모 등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라는 인물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싶으신가요? 사랑을 얻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의 목을 얻고자하는 그녀를 진정 ‘악녀’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녀에게서는 젊음과 병듦, 순진함과 타락함이 같은 색상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흰색입니다. 살로메는 어떤 때는 디오니소스의 열정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차가운 달빛, 무색을 반영합니다. 이 모든 형용사는 상황이 얼마나 급변할지, 심리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보여줍니다. 보들레르는 살로메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타락의 번뜩임’. 살로메에게서 우리는 한 십대 소녀가 점점 눈멀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에 사로잡힌 괴물이 되어갑니다. 이오카난을 만났을 때 그녀의 의식은 다시 눈멀고, 그에게 거절당하자 그를 죽여서라도 자기 것으로 가지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제대로 가는 방향일까요? 아니면 그녀는 중개자로서 정치적 술수의 희생양일까요? (전 요즈음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봅니다.)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터키국립극장 <살로메>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터키국립극장 <살로메>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작품에서 ‘달’은 비단 시·공간적인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을 넘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성을 지닙니다. 당신의 작품에서도 무대를 그득 메운 달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데, 달과 우물, 연기와 레이저 불빛 등 당신이 무대에서 사용한 각종 효과들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렇습니다. 달은 제 연극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달은 이런 비극적인 밤에 모든 이들을 유혹합니다. 그들은 마치 홀린 것 같습니다. 달은 일종의 거울입니다. 그들은 그 자신들과 그들의 바람 혹은 욕심을 달에서 봅니다. (그렇지만 배우들은 무대에서 달을 보지 않습니다. 혹은 덜 봅니다.) 그들은 달을 보지만 달의 어두운 면을 연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달은 모두의 목격자입니다. 저는 이 연극에서 살로메를 재해석하고 싶었습니다. 모르는 공간에서의 ‘우주적인’ 이해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세계와 시대를 이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전 이오카난이 갇히는 지하요새를 추상적인 우물로 바꾸었습니다. 그 해석의 내용과 조화되게 말입니다. 그리고 입구부터 바닥이 보여야 하는 우물을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빛의 우물로, 관객의 시선과 높이가 같게끔 만들어 나선형의 바닥으로 확대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효과를 위해 레이저 불빛을 사용했는데, 확실히 연극을 위해 조명의 효과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오카난의 우물, 효과음악과 목소리, 살로메의 바이올린은 에르칸 오구르가 작곡하고 연주합니다. 그는 터키의 중요한 음악가이며, 세계적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로메>에서 배우들은 상당히 상징적이고 절제된, 그러면서도 질서가 부여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에 반해, 감정의 과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공포를 야기하는 대사를 뱉어냅니다. 이러한 연출은 무엇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까?

극 속의 배역들은 모든 감정을 최대한으로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은 매우 체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어떤 때는 매우 인위적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상징적입니다. 이런 이유로 연극을 정의할 때 작가는 형식의 원칙을 찾고, 또 만들고자 합니다. 제 연극에서는 모든 이들이 관계 맺고 있지만 서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연기할 때는 마치 꼭두각시 같아 보입니다. 전 연극적 언어로 와일드의 이런 독특한 취향과 음악을 잡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시적 상징이 깔린 깊이에 도달하고자 했고 이러한 것들을 이율배반적 상징들과 연기와 함께 무대에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괴상한 요소들은 자연스럽고 그들은 이 연극에서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연극을 가리켜 “난 연극을 객관적인 예술형태로 보고, 그것을 매우 개인적인 표현인 시나 소네트로 바꾼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또한 무대에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살로메>는 터키국립극장이 한국에서 초연하는 작품입니다. 올해로 터키와 한국이 수교 50주년을 맞았지만 그간 공연예술계에서는 그 만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축제가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인 만큼, 각국에서 초청된 작품들에서 그 나라만의 문화적 특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걸게 되는데, 당신의 <살로메>에서 접할 수 있는 터키만의 색깔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첫번째 작품인 <마녀들의 맥베스> 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초로 쓴 새로운 연극입니다. 전 1987년부터 이스탄불 국립극장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87년 이후 보이첵이나 셰익스피어 등 다수의 고전 연극들을 연출했습니다만 저의 해석은 터키에서는 전통적이기 보다는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몇 번 저의 작품들은 해외에 초청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살로메>로 저명한 앙카라 예술협회상에서 최우수 연출, 최우수 음악, 최우수 의상, 올해의 연극 등 4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연출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터키의 위대한 건축가 시난(16세기)에 대한 희곡을 쓸 것입니다. 한국 관객들도 저의 <살로메>를 좋아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한국의 많은 좋은 작품들이 터키에서 공연된 것을 압니다. 한국관객들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 본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으며 번역 및 진행에는 국립극장 공연사업팀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글_김슬기(soolsoolgi@naver.com) 사진_국립극장 제공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10 한국연극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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