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 이끈 송승환 프로듀서
‘난타’ 이끈 송승환 프로듀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꼽히는 〈난타〉가 10월10일로 꼭 열돌을 맞았다. 1997년 10월10일 호암아트홀에서 세상을 처음 난타했던 이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는 장수 공연상품으로 자리잡아 사물놀이 타악리듬으로 세상을 울리고 있다.
서울 당주동 피엠시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만난 송승환(50) 프로듀서는 “10주년을 맞이하지만 〈난타〉를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 것인지 사실은 걱정이 더 앞선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장기공연의 공을 고교 동기동창이자 피엠시프로덕션 공동대표인 이광호씨와 배우·스태프들에게 돌렸다. “제 파트너인 이광호 대표가 가장 고마운 사람이죠. 초기 자금난을 겪을 때 저를 믿고 사재를 털어 투자해줬으니까요. 두번째로는 초기 배우와 스태프들입니다. 개런티도 제대로 못줬고, 밤새우는 게 일상이었어요.”
〈난타〉가 지금까지 얻어낸 성과는 놀랍다. 한국 전통가락인 사물놀이 리듬으로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코믹하게 그린 〈난타〉는 10년 동안 35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고, 약 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한국문화의 블루칩이다. 1999년 한국 공연물 최초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2004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무대에 진출해 1년6개월 동안 장기공연을 했다. 세계 24개국 205개 도시를 돌며 한국 문화를 알렸고 현재 서울 강남과 강북 두 곳 전용관에서 365일 관객을 맞고 있다.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영화배우 니컬러스 케이지와 장국영 등 세계적 명사들이 이 공연을 봤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은 언어소통이 필요없는 비언어극이란 점이 세계 진출을 가능하게 했다. 〈난타〉는 한 발짝 더 나갔다. “〈난타〉 이전에도 해외에 넌버벌극이 있었지만 ‘스토리 텔링’이 있는 넌버벌이 없었다. 〈난타〉는 최초로 스토리텔링, 드라마가 있는 넌버벌이고, 그 드라마가 코미디였다. 그게 외국인들에게 흥미를 끌었던 것이다.” 송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여기에 타악 리듬이 만국 공통으로 통하는 것도 한몫했다.
관객 350만명, 매출 700억원 ‘블루칩’
국내 공연계에 세계무대 ‘길’ 보여줘
“비보잉·마술 접목 업그레이드 할 것” 난타는 한국 공연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공연단체들이 해외로도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해 국내 공연계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일조한 것이다. 그도 “공연시장을 국내로만 생각하던 프로듀서들에게 ‘우리도 해외 공연이 가능하구나’라고 가능성을 보여준 게 큰 의미 같다”고 평했다.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간 작품들을 심사하게 됐는데 모두 13개 작품이더라구요. 격세지감이 느껴어요. 모두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문을 두드리는 단체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공연상품을 관광과 연계하는 방식을 제대로 보여준 것도 〈난타〉가 남긴 것이다. 한국 1년 관광객 600만 명 가운데 30만 명이 〈난타〉를 본다. 이 덕분에 〈난타〉는 2000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한국관광대상을 받았고 ‘서울의 10대 볼거리’로도 뽑혔다. 10년 동안 놀라운 성취를 이룬 난타는 이제 다시 새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난타가 보여준 가능성들은 또다른 난타로 이식될 전망이다. 송 프로듀서는 창작뮤지컬과 넌버벌 퍼포먼스로 새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시장을 놓고 보면 역시 넌버벌이 진출하기 쉬운 장르입니다. 〈난타〉는 타악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소재가 많아졌어요. 타악뿐만 아니라 마술, 애크로배틱, 비보잉 등을 접목하는 넌버벌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는 역시 뮤지컬이예요. 지금 아시아에서 창작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거든요.”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이야기 갈고 닦고 세계적 입맛 연구 ‘난타’의 성공비결
〈난타〉의 내용과 뼈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속에는 상당한 변화가 숨어 있다. 새로운 실험을 계속 시도해 검증된 것들로 채워나간 ‘업그레이드’가 바로 〈난타〉의 성공비결이다.
97년 초연 당시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분명해진 ‘이야기 구조’다. 결혼 피로연을 앞두고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드는 틀은 그대로지만 구성은 훨씬 정밀해졌다.
〈난타〉는 원래 주방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사물놀이를 전통악기가 아니라 생활용품으로 연주하면 재미있겠다는 발상에서 소리를 내는 도구로 주방도구들이 채택됐고, 이에 따라 무대가 주방이 되면서 요리사가 요리하는 과정과 이야기로 발전해나간 것이다.
이야기보다는 독특한 상황 설정과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난타〉는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장기공연 체제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대적 보완작업에 들어간다. 해외 진출이 목표인만큼 국적과 문화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강화한 것이다.
피엠시프로덕션은 우선 해외 공연전문가들인 ‘쇼 닥터’ 3명과 계약해 〈난타〉를 해외 관객의 시각에서 평가하고 정비했다. 지금 〈난타〉의 기본 틀이 이때 갖춰졌다. 우선 이야기 구성을 구체화했다. 1시간 안에 음식을 만드는 상황을 확실하게 했고, 무대에 시계를 달아 실시간 대응과정을 보여줘 긴장감을 높였다. 요리도 한국사람들만 아는 것은 피하고 샐러드와 오리요리, 케이크 등 보편적인 것들로 골랐다. 전체적으로 10가지 정도의 에피소드로 이뤄지는 공연의 각 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예비 아이템도 확보했다.
피엠시가 해외 공연전문가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은 데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해외시장 정보를 얻는 한편 자체적으로 외국 공연시장을 파고들 노하우가 없었던 때라 이들에게 외국 판매도 함께 담당하게 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난타〉 뒤에 외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공연물들에게 모델이 됐다.
이후 〈난타〉는 작은 보완작업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뉴욕공연에 맞춰 한국음식을 알리는 부수 효과도 고려해 메뉴로 불고기를 추가했고, 무술과 접목한 볼거리인 요리사들의 빗자루 대련 장면 등 출연진의 아이디어를 상당수 추가했다. 이렇게 들어갔다가 빠지거나 예비용으로 축적된 아이템만으로도 속편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끊임없이 가다듬은 덕분에 〈난타〉는 외국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이는 역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다시 ‘외국사람들이 왜 열광할까’ 관심을 불러일으켜 극장으로 끌어모으는 효과를 얻으며 장수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국내 공연계에 세계무대 ‘길’ 보여줘
“비보잉·마술 접목 업그레이드 할 것” 난타는 한국 공연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공연단체들이 해외로도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해 국내 공연계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일조한 것이다. 그도 “공연시장을 국내로만 생각하던 프로듀서들에게 ‘우리도 해외 공연이 가능하구나’라고 가능성을 보여준 게 큰 의미 같다”고 평했다.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간 작품들을 심사하게 됐는데 모두 13개 작품이더라구요. 격세지감이 느껴어요. 모두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문을 두드리는 단체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공연상품을 관광과 연계하는 방식을 제대로 보여준 것도 〈난타〉가 남긴 것이다. 한국 1년 관광객 600만 명 가운데 30만 명이 〈난타〉를 본다. 이 덕분에 〈난타〉는 2000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한국관광대상을 받았고 ‘서울의 10대 볼거리’로도 뽑혔다. 10년 동안 놀라운 성취를 이룬 난타는 이제 다시 새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난타가 보여준 가능성들은 또다른 난타로 이식될 전망이다. 송 프로듀서는 창작뮤지컬과 넌버벌 퍼포먼스로 새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시장을 놓고 보면 역시 넌버벌이 진출하기 쉬운 장르입니다. 〈난타〉는 타악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소재가 많아졌어요. 타악뿐만 아니라 마술, 애크로배틱, 비보잉 등을 접목하는 넌버벌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는 역시 뮤지컬이예요. 지금 아시아에서 창작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거든요.”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이야기 갈고 닦고 세계적 입맛 연구 ‘난타’의 성공비결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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