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랜드’ 시리즈 중 SL030
전시회 여는 ‘회색의 달인’ 민병헌 사진작가
심상으로 포착한 풍경들 양평 작업장서 손수 인화
“프레임으로 풍경을 보는건 여체를 훔쳐보는것과 같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안개지대인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터널을 지나야 하는 그곳에 ‘회색의 달인’ 민병헌(52) 사진작가의 작업장이 있다. 지난 4일 하루 빛이 다한 회색시간에 그의 작업장에 도착했다.
찢어진 와이셔츠에 후줄근한 청바지, 슬리퍼 차림인 작가는 작품에서 받은 인상인 깐깐함과는 달리 시골풍 아저씨다. 기다리는 동안 한 잔 했다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명 연작인 ‘잡초’ ‘안개’ ‘몸’ 등의 시리즈를 낳은 산실은 숙소와 아카이브를 겸한 2층짜리 작업실과 별도로 지은 컨테이너식 30평 암실로 돼 있다.
“프레임으로 풍경을 보는 것은 여체를 훔쳐보는 것 같아요.” 풍경의 속살을 보는 것이나 프레임으로 낚아채는 것이나 에로틱한 페티시즘과 다르지 않다는 것. 게다가 색깔은 물론 흑과 백 껍데기마저 벗겨내 회색 속살이다. “안셀 아담스(미국의 흑백사진가)는 회색도를 10개로 나눴지만 어림없어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말이다. 무채색 양끝의 딱딱함을 없애고 난 뒤의 부드러움에만 탐닉하니 당연히 그럴 터이다. “내 사진은 스님들이 참 좋아해요.” 성적인 쾌감의 결과와 탈속한 승려의 선호가 아이러니다.
그는 왜 회색만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자기 좋은 사진만 찍으며 별 볼 일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마니아가 생겼다며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배병우, 구본창 작가와 함께 현재 국내 유명 3대 사진작가에 드는 그의 작품은 아트페어, 전시회에 내는 족족 매진된다. 국내외 주요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산타페, 프랑스 파리 등에 전속화랑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보일 듯 말 듯 안갯속, 또는 새벽의 아스라한 어둠속 풍경이어서 적어도 가로 세로가 1m는 돼야 한다. 신문윤전기로 재현한 작은 사진으로는 참맛을 보여주기 어렵다.
“풍경을 발견하는 순간 어떤 모양으로 사진이 나올 거라는 걸 알아요.” 그의 작업은 말하자면 심상의 구현이다. 심상은 내부에서 익어 풍경과 만나 구체화한다. 그는 여행을 할 때 카메라를 갖고 가지 않는다. “돌아다니다가 이곳이다 싶은 곳을 점찍어 둬요. 나중에 적절한 시간대에 사진기를 들고와 찍지요.” 그가 좋아하는 시간대는 가을에서 겨울 사이. 흐리고, 안개 끼고, 눈 오는 날 아침과 저녁이다. 그러니 풍경 속의 나무들은 벌거벗었다.
인화는 심상이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순간. 인화에서 수없는 그레이드의 회색이 드러난다. 높이 6미터가 넘는 암실에는 키가 2미터는 됨직한 확대기가 버티고 있고, 4개의 약품트레이는 거의 탱크 수준이다. 인화에선 광원에서 멀수록 빛이 약해지는 현상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손바닥으로 빛의 양을 조절해가면서 보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손으로 빛을 어루만지면서 심상으로 본 회색 풍경을 그만의 감각과 노하우로 구현해낸다. 오히려 일은 흑백 인화지를 구하는 것. 면으로 된 섬유인화지를 최대한 확보해놓고 쓴다. “예전 필름을 나아진 기술로 인화해도 세월의 깊이를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빈티지라는 게 있는 거죠.” 세월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고 세월을 빨아들여 색이 더욱 깊어진다. 그는 “컬러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회색의 깊이가 무한하고 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30년 흑백사진 궤적은 공근혜갤러리(02-738-7776)에서 28일까지 전시한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프레임으로 풍경을 보는건 여체를 훔쳐보는것과 같아”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안개지대인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처럼 터널을 지나야 하는 그곳에 ‘회색의 달인’ 민병헌(52) 사진작가의 작업장이 있다. 지난 4일 하루 빛이 다한 회색시간에 그의 작업장에 도착했다.
두물머리 작업장의 민병헌 작가
인화는 심상이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순간. 인화에서 수없는 그레이드의 회색이 드러난다. 높이 6미터가 넘는 암실에는 키가 2미터는 됨직한 확대기가 버티고 있고, 4개의 약품트레이는 거의 탱크 수준이다. 인화에선 광원에서 멀수록 빛이 약해지는 현상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손바닥으로 빛의 양을 조절해가면서 보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손으로 빛을 어루만지면서 심상으로 본 회색 풍경을 그만의 감각과 노하우로 구현해낸다. 오히려 일은 흑백 인화지를 구하는 것. 면으로 된 섬유인화지를 최대한 확보해놓고 쓴다. “예전 필름을 나아진 기술로 인화해도 세월의 깊이를 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빈티지라는 게 있는 거죠.” 세월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고 세월을 빨아들여 색이 더욱 깊어진다. 그는 “컬러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회색의 깊이가 무한하고 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30년 흑백사진 궤적은 공근혜갤러리(02-738-7776)에서 28일까지 전시한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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