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현의 화업 60년전 / 이준전
원로 화백 김보현·이준 화업전 나란히
이번 가을에는 원로들 전시회가 유독 많다. 같은 추상계열의 김보현(90) 화백과 이준(88) 화백이 화업 60년을 결산한다. 살아온 역정만큼이나 전시장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 고통과 환희의 변주: 김보현의 화업 60년전(왼쪽)=덕수궁미술관(02-2022-0600) 2008년 1월6일까지. 해방~한국전 공간에서 우익한테는 빨갱이로, 좌익한테는 퍼랭이로 몰렸던 대학교수. 1955년 쫓기듯 미국으로 가 소호의 넥타이공장에서 시간당 1달러를 벌며 풀칠을 하는 등 간난신고 끝에 국제무대서 화가로 우뚝 섰다. 수구초심이라고 백발이 돼 모든 그림을 짊어지고 알량한 조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에서는 1995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회고전 때 격정적인 터치로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다는 말이 돌기까지 철저히 잊혀진 인물이었다.
현재 그림 대부분은 그가 교수로 있던 조선대에 기증하고 뉴욕의 아틀리에에서 미국인 아내 실비아 월드와 살고 있다. 식물원처럼 가꾼 옥상에서는 새들을 애지중지 기른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자유의지를 투사한 듯.
전시회에는 음울한 격정을 쏟아낸 추상표현주의 시대, 구도하듯 야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던 정물화 시대를 거쳐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삶의 고통과 기쁨을 표현하는 완숙기 등 노대가의 작품 220점을 시대순으로 보여준다.
■ 자연의 빛으로 엮은 추상-이준전(오른쪽)=고양 아람미술관(031-960-0180) 12월2일까지.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인 작가의 화업 60년 회고전. 53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이화여대 미대 교수로 30년 근속을 했다. “모든 형태는 원통과 원추로 수렴된다”는 세자니즘을 평면화해 삼각, 사각, 원형으로 화면을 채웠다. 조각보 돗자리 등에서 보이는 우리 전통문양과 색을 접목한 것이 특징. 초기에는 선과 면 위주로 차갑고 날카로웠던 반면, 후기로 접어들면서 크고 작은 원이 많아져 부드러워졌다. 줄곧 밝은 색조를 즐겨 젊은 작가의 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발랄하다.
작가는 1973년 파리에 갔다가 작품 그득한 장 뒤뷔페의 전람회를 보고 자극받아 늘 신인이라는 기분으로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요즘도 하루 8시간 붓을 잡는다는 그는 300여점의 미발표 작품이 남았다고 말했다. 추상 외에 유럽 여행에서 건진 50여점의 스케치도 걸었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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