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조각가 최종태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구도의 여정’전
흙과 나무로 인물상·종교조각 외길
성경·불경에 뿌리둔 ‘휴머니즘’ 구현
두손 모은 여인상 40점·회화도 선봬 “미켈란젤로 작품에 미완성이 많은 게 이해가 돼요. 예술작품에 완성이란 없는 겁니다. 다만 어느 시점에서 작업을 멈출 따름이지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적한 주택가. 16일 오후에 찾은 최종태(75·위 사진) 작가의 자택 겸 작업실에는 바짝 마른 가을볕이 비스듬했다. “더는 손댈 수 없다고 느껴지는 시점이 있어요. 영감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욕심을 버리는 때이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미완성이 곧 완성이지요.”
애초 전시장으로 만들었지만 조각품 창고로 변해 버린 작업장 1층. 불을 켜자 일제히 입구 쪽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들. 노작가의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넘쳤다. 그의 품에서 탄생한 여인들마다 미완성인 채 칼을 놓은 시점을 고통스럽게 기억나게 한다. “내가 죽어 없어지는 날 나의 작품들은 홀로 설 것”이라는 말은 그런 뜻일 거다.
최종태,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여인상. 이마에서 콧날까지 이어지는 동그란 선과 살포시 내려감은 눈, 턱밑 또는 가슴께 모아진 두 손. 그 이하는 조붓한 치마를 두른 듯 단순한 몸뚱이의 여인. 그는 추상조각이 주류였던 한국 조각계에서 외곬으로 인물상과 종교 조각에 매달렸다. 그가 좋아하는 재료는 흙, 브론즈, 나무. 두들기거나 불꽃을 튀기거나 격렬한 동작이 요구되는 철, 돌, 그리고 플라스틱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내가 여성만 조각하고 있더라고요.” 실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는 예수가 유일하다. “어려서 어머니가 관절염을 앓아 친정에 많이 가 계셨어요. 할머니와 함께 지낸 기억이 더 많아요. 어머니는 나중에 중풍으로 고생을 하셨어요. 어머니에 대한 측은지심이 작품에 영향이 없지 않은 듯해요.” 여체가 가지는 부드러운 선과 볼륨 등 조각적 측면도 매력적이지만 그보다는 ‘영원으로 통하는 여성성’에 더 끌렸다는 자기분석이다.
“종교와 예술이 르네상스 때 분리된 이래 100여년 이상 별개로 존재해왔지요. 나의 작품은 종교와 평행선을 그어왔지만 그 틈을 점점 좁혀온 것 같아요.” 가톨릭 성모상, 길상사의 관음상 등 그가 ‘종교조각’을 한 게 사실이지만 ‘구도적인 조각’ 또는 ‘휴머니즘적 조각’이란 표현이 더 적실하다. 한우물을 파서 지금에 이른 ‘두 손 모은 여성상’과 다르지 않으며, 성모상과 관음상이 닮았을 만큼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의 휴머니즘은 뿌리가 깊다. 그는 중학교 때 3년에 걸쳐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완독하고 이어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들었다. 대학 조각과에 진학해서는 종교에 심취해 미술공부 외에 불경과 성서를 탐독했다. “하루는 성서를 읽는데 밤새워 거의 다 읽었어요. 가슴과 눈으로 찍혀오더군요. 왜 그랬을까 궁금했는데 법정 스님이 경 읽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라더군요.” 여기서 경은 바이블을 뜻하는 경(經)이 아닌 씨줄 徑. 내 종교, 네 종교 가르는 것이 날줄이듯 겉보기 아름다움도 날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하 작업장. 2층에서 작업을 하다가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탓에 안정이 안 돼 이곳으로 옮겨왔다. 제작 중인 작품은 보이지 않고 쓰다 남은 나무둥치가 구석에 쌓였다. 몇 해 전 산 한 트럭분의 박달나무 다듬이와 큰 덩어리 은행나무 잔해다. 브론즈로 작품을 만들고 난 석고상이 한쪽 벽에 진열돼 있고 각종 조각칼과 전동공구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근작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목조각품에 색깔을 입힌 것. 소나무는 옹이까지 살리지만 특별한 결이 없는 은행나무는 둥근 칼로 떠낸 물결무늬만 살려 면마다 오방색을 먹였다.
“그림에 대한 미련이 조각에 스며든 거죠. 처음에는 빨갛게 칠했다가 기도하는 사람인데 차분한 색이 좋지 않겠느냐는 제자의 권고를 따랐어요.”
그는 조각가로만 알려졌지만 35년 동안 ‘열나게’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요즘은 수채화다. 작년 가을부터 다시 그리기 시작해 이제는 옛 기량을 거의 회복했다. 내킬 때마다 수시로 붓을 든다. 거실 또는 침실과 작업공간과의 거리가 짧게 설계된 작가의 집은 그래서 맞춤하다. 지하~1층~2층을 관통하는 나선형 층계를 중심으로 두 공간이 연결돼 있어 아이디어와 의욕이 솟을 때를 놓치지 않는다.
“한 그릇에 담긴 다른 물건처럼 어떨 때는 조각이, 어떨 때는 그림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수채, 파스텔, 먹, 흙, 브론즈, 나무가 마구 당겨요.”
‘지금은 바빠야 할 시간’이란 시에 작가의 심경이 드러나 있다. “나는 그림이라는 일을 했습니다/ 평생을 했어도 내 맘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것이 그림입니다/ 이제는 그런 거려니 하고 지냅니다/ …/ 오늘 따라 내 빈손이 커 보입니다/ 참으로 바빠야 할 시간입니다/ 주님 나를 어여삐 여기소서.”
18일부터 11월11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개인전 ‘구도의 여정’에는 40여 여인상이 등장한다. 그동안 방황하던 손이 가지런히 모여 있다. 회화도 60여점을 걸었다. 때맞춰 근작을 소개하는 책 〈최종태 조각 1991~2007-구도의 길에 세운 선의 모뉴망〉(열화당)도 나왔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성경·불경에 뿌리둔 ‘휴머니즘’ 구현
두손 모은 여인상 40점·회화도 선봬 “미켈란젤로 작품에 미완성이 많은 게 이해가 돼요. 예술작품에 완성이란 없는 겁니다. 다만 어느 시점에서 작업을 멈출 따름이지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적한 주택가. 16일 오후에 찾은 최종태(75·위 사진) 작가의 자택 겸 작업실에는 바짝 마른 가을볕이 비스듬했다. “더는 손댈 수 없다고 느껴지는 시점이 있어요. 영감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욕심을 버리는 때이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미완성이 곧 완성이지요.”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구도의 여정’전
“종교와 예술이 르네상스 때 분리된 이래 100여년 이상 별개로 존재해왔지요. 나의 작품은 종교와 평행선을 그어왔지만 그 틈을 점점 좁혀온 것 같아요.” 가톨릭 성모상, 길상사의 관음상 등 그가 ‘종교조각’을 한 게 사실이지만 ‘구도적인 조각’ 또는 ‘휴머니즘적 조각’이란 표현이 더 적실하다. 한우물을 파서 지금에 이른 ‘두 손 모은 여성상’과 다르지 않으며, 성모상과 관음상이 닮았을 만큼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의 휴머니즘은 뿌리가 깊다. 그는 중학교 때 3년에 걸쳐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완독하고 이어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들었다. 대학 조각과에 진학해서는 종교에 심취해 미술공부 외에 불경과 성서를 탐독했다. “하루는 성서를 읽는데 밤새워 거의 다 읽었어요. 가슴과 눈으로 찍혀오더군요. 왜 그랬을까 궁금했는데 법정 스님이 경 읽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라더군요.” 여기서 경은 바이블을 뜻하는 경(經)이 아닌 씨줄 徑. 내 종교, 네 종교 가르는 것이 날줄이듯 겉보기 아름다움도 날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구도의 여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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