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의 대작 <촉잔도권> 중 일부.
조선남종화 진수 ‘촉잔도권’ 등 간송미술관서 ‘현재 심사정’전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다는 촉으로 가는 길(촉도)을 조선의 화가가 그렸다. 현재(玄齎)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8미터에 이르는 대작 〈촉잔도권〉(蜀棧圖卷). 촉도는 유비가 재기를 위해 허위허위 걸은 길이고 당 현종이 아름다움을 못 잊어 그려오게 했다는 절경이다. 산이라고는 금강산과 개성 천마산밖에 못 본, 예순둘 조선의 노인이 왜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02-762-0442)에서 14일부터 28일까지 여는 ‘현재 심사정 탄신 300주년 기념 현재화파’ 전시회에서 비밀의 단서를 잡을 수 있다. 거기에는 간송미술관 소장 현재 작품 46점과 그 유파라 할 이광사, 강세황, 최북, 이인상, 김윤겸, 이윤영, 김희겸, 강희언 등의 작품이 두루 전시돼 있다.
현재는 조부 탓에 평생 그림만 그리며 궁핍하게 살다 간 화가다. 조부 심익창이 과거시험에서 커닝을 하려다 발각돼(1699) 후손들의 과장 출입이 봉쇄되는데, 그도 모자라 경종의 왕세제(나중에 영조가 됨)를 폐위시키고 권력을 쥐려고 역모를 꾸몄던 것(1724). 물증이 없어 멸문지화를 면했지만 후손들은 손가락질 때문에 문밖 출입이 사실상 봉쇄됐다.
현재의 비극은 역적 집안이 된 외에 19살까지 영조의 그림 선생인 겸재 정선한테서 그림을 배웠던 것. 스승은 영조의 총애로 전국을 돌며 진경산수를 완성해가고 자신은 두문불출 중국의 화보 속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와룡암소집도’, ‘강상야박’ 등 남종화풍의 그림이 그 결과. 불가근 스승과는 긴장관계. 1754년 마흔여덟에 스승이 사생했던 금강산에서 골기가 가득한 산세를 보고 겸재의 진경산수가 불가피함을 절감하지 않았겠는가. ‘삼일포’ ‘고사은거’ ‘산림유거’ 등. 축축한 남종화에 굳세고 해맑은 우리 고유의 미감을 곁들이면서 ‘조선남종화’의 길을 열어젖혔다.
화력이 농익은 예순둘. 현재의 뒤를 봐주던 7촌조카 심유진이 촉도산천을 그려달라는 청을 넣었다. 쌓인 은혜를 갚을 겸 현재는 평생 연마한 열두 준법을 총동원하여 천하절경을 뽑아냈다. 소용돌이 치는 듯한 바위연봉 사이사이 새들도 쉬어넘는 고갯길, 우당당탕 급류, 돛단배 다리 건너 촌락 등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백의 ‘촉도난’ 등을 통해 마음속에 전모를 그려놓지 않았을까. 게다가 촉도의 험하기가 역적집안으로 애를 끓이면서 살아온 자기의 삶과 흡사하지 않았겠는가. 진을 다 우려낸 그는 한 해 뒤 죽었다.
심유진의 아들 심래영 대에서 조씨 사위한테로 넘어간 그림은 일제 때 거간꾼한테 당시 집 한 채 값인 1천원에 팔리고 다시 5천원에 간송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는 후일담. 수리비용이 6천원이 들었다나.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고사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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