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뮤자게트’
발레 ‘뮤자게트’
<뮤자게트>를 위한 밤이었다. 객석은 환호했고,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공연 시작 때 보다 경쾌했다. 기대 이상의 선물을 받은 이유에서다. 보리스 에이프만은 발란신에 헌정한 <뮤자게트>를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선사했고 그의 작품을 춤춘 국립발레단 단원들은 주역과 단역 구분 없이 하나 하나 빛이 났다. 연습과정 동안 단원들이 느꼈을 개인의 발전 정도는 무대에서 보이는 이상이었을 것이다.
보리스 에이프만은 당대성이 클래식 발레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극적 요소로 부각되는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자신만의 발레단에 적용해왔다. 물론 <뮤자게트>에서도 단순하고 현대적인 무대 장치와 인상적인 도입 장면으로 부터 그 매력을 예고하며 시작한다. 연이은 실연과 그 과정에서의 성숙은 발란신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으며 청춘을 세우는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도 되기 때문일까, 앞의 두 작품보다 감상이 편안했고 재미있었다.
캐스팅은 성공적이었다. 특히 <뮤자게트>에서 ‘캣’이라는 배역은 김리회를 위해 있었다. 첫 번째 작품 <레 실피드>에서도 정교하고 우아한 팔과 손 동작으로 뛰어올라 착지하는 순간 발끝까지 온 몸의 탄성(彈性)을 느끼게 해주었던 그는 <뮤자게트>에서는 중력과 관절의 한계를 잊은 김현웅과의 2인무로 관객을 미혹하여 탄성(歎聲)을 자아냈다. 얼마 전 지나친 언론의 주목으로 긴장한 탓인지 다소 불안한 시작을 보였던 김주원은 재등장에서부터 처음과는 달리 우아함과 유려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표현력으로 안정감 있는 플라워가 되었다. 우연인가, 발란신의 김현웅은 보리스 에이프만이 자신의 발레단원 자격으로 내세운 ‘키가 크고, 용모가 수려하고, 연기를 잘할 것’이라는 조건에 딱 맞는 발레리노다.
성공적이었던 <뮤자게트>에 견줘 한국적 해석으로 관심을 끌었던 <춘향>은 고전의 재연에 있어 전반적인 ‘취향의 문제’를 드러냈다. 원작에서 안무를 전혀 변형하지 못했던 이유 말고도 품과 공이 많이 들어갔을 새로운 의상과 무대가 획기적이거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춤을 돋보이게 하지도 못했다. 예술감독의 고집스럽고 카리스마적인 연출력으로 견해를 하나로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한 부분이다. 혹시 그러한 탓에, 긴 공연 시간 동안 두 번의 인터미션을 참지 못하고 <뮤자게트>를 보지 못한 관객이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되돌아와서 보기를 권고한다.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기대하는 무대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는 이미 그 예상을 앞서고 있는 데다가 만들어 가고 있다.
이진아/문화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wallbrea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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