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스타벅스 상표 뒤 생산자 고통 보라”

등록 2007-11-15 19:22

‘플랜테이션-커피와 설탕’ 전시회를 여는 작가 다리
‘플랜테이션-커피와 설탕’ 전시회를 여는 작가 다리
커피 찌꺼기 소재 삼아 식민지배 고발하는 작가 다리
“에스프레소 한 잔에 커피콩 50알이 들어갑니다. 제3세계 커피나무 농장의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죠.”

‘플랜테이션-커피와 설탕’ 전시회를 여는 작가 다리(37)는 커피에 담긴 추악한 식민의 역사를 들춰낸다.

젖퉁이가 일그러진 여성의 반신 부조. 스물넷 데드마스크에 구찌 가격표처럼 붙은 플랜테이션 시작년도. 흰 설탕에 절여진 검은 두상. 미이라처럼 관 속에 든 토르소. 흙으로 돌아갔지만 두 눈을 부릅뜬 얼굴들. 대나무에 걸린 머리통들. 특히 눈길을 잡는 한 작품. 상반신은 커피찌꺼기, 하반신은 거름종이로 만든 ‘신은 맛있는 기도만 듣는다’. 검은 바탕에 하늘을 향한 얼굴, 모은 두 손, 꿇은 무릎만 돋을새김 했다.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기도.

작가가 빚어낸 형상들은 커피 주산지인 중남미, 아프리카, 베트남 원주민의 피부색을 닮았다. 주요 소재는 원두커피 찌꺼기와 쓰고난 거름종이와 흰 설탕. 커피찌꺼기를 응고제와 버무리면 진득한 찰흙덩이가 된다. 그로써 이주 노동자의 마스크와 몸통을 떠냈다. 설탕은 흰 눈동자, 백인의 얼굴이다.

“마스크를 뜰 때 식민후예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게 더 힘들었어요. 카페인을 우려낸 뒤 버려지는 커피가루와 노동력을 착취 당하는 그들의 운명이 어찌 그리 닮았는지요.”

3년 전쯤 바리스타 ‘알바’를 하다가 문득 커피찌꺼기에 눈길이 갔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고운 갈색가루. 버려진 나무로 오브제를 만들어오던 그에게 좋은 재료감이었다. 물성에서 시작한 커피에 대한 관심은 식민지배과 플랜테이션 농장,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지난 해에는 인도네시아 커피농장을 찾아가 그들의 삶을 체험하기도 했다.

“스타벅스 상표를 걷어내고 생산현장의 고통을 환기하고 싶었어요.”

전작에서도 작가는 발칙함을 드러낸 바 있다. ‘세상=남성=책’이란 논리로 책을 작두로 써걱써걱 잘라 흩어놓은 설치작업을 한 바 있다. ‘배윤주’를 버리고 ‘다리’가 된 것도 그렇다. 무녕왕릉의 부장품에 몰래 이름을 새겨넣은 백제의 장인이 ‘多利’다.


“커피, 담배, 차 등 기호품에는 식민의 기억이 담겨 있어요. 그것을 화두로 삼을 생각입니다.” 그는 전시장 귀퉁이에 끓인 커피를 몇잔 건넸다. 20일까지, 관훈미술관 (02)733-6469).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