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 개인전을 열었던 정해창의 ‘자화상’.
일민미술관서 근대 지식인 ‘정해창’전
최초로 사진개인전 연 작가
풍속사진, 전통회화 보는듯
금석학·불교미술사 연구도 일제 강점기가 낀 조선과 대한민국은 단절돼 있다. 도대체 18~19세기 흥륭했던 이서구, 유득공, 이덕무, 이옥 등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전통은 어디로 갔을까. 일민미술관(02-2020-2055)에서 여는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한다’(11월9일~2008년 2월3일) 전시회는 그 답이다. 정해창(1907~1967)은 1929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개인전을 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광화문빌딩 2층에서 사흘간 풍경과 풍속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었다. 당시 신문들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1931년, 34년에 이어 39년 4회 개인전인 ‘정해창사진인화개인전’을 화신백화점 7층에서 열었다. 이때의 사진들은 2×3 직사각형뿐 아니라 부채꼴, 원형, 8폭 병풍도 있었다.
정해창의 사진들을 보면 그 소재가 전통회화의 그것과 일치한다. 그리기와 박아내기의 차이가 있을 뿐 인물, 풍속, 산수, 점경인물, 화조영모 등 동일하다. 풍속사진이 가장 많은데, 18, 19세기 풍속화와 흡사하다. 서민의 일상모습은 김홍도나 김득신을 닮았고 빨래터 전경은 신윤복 김홍도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속의 여성은 신윤복의 미인도를, 말 사진은 윤두서의 유하백마를, 매화는 허련의 흑매를 닮았다.
배우개(종로 4가) 원제약방 집 외아들인 정해창은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외국어학교에서 독일어를 전공하며 서양화와 사진을 배웠다. 이어 중국으로 가 사진술과 금석학을 익혔다.
그는 종달새와 매화, 커피에 빠졌고 사진, 서예, 전각, 금석문에 관한 책과 자료를 수집 정리했다. 특히 불교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8천여장의 사진을 남겼다. 또 서화가이자 전각가인 위창 오세창, 성재 김태석한테 배워 김정희, 오경석, 오세창에 이어 금석학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1941년과 1951년 서예·전각 전시회를 열며 활동하다가 1957년 낙상사고 뒤에는 칩거하면서 한국 불교미술을 연구하고 전쟁전후 촬영한 관련 사진을 5권의 스크랩북(2483장)으로 정리했다. 고유섭, 송석하, 전형필, 석주명 등이 그의 동년배들이다.
전시회를 기획한 이경민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연구원씨는 “정해창은 사진, 서예, 금석학, 불교미술사 등에서 모두 딜레탕트의 한계를 넘어섰다”면서 “시서화전에 사진을 겸한 것일 뿐 18세기 조선문인의 전통을 계승한 분”이라고 말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은 14일치 44면에 출고해둠
풍속사진, 전통회화 보는듯
금석학·불교미술사 연구도 일제 강점기가 낀 조선과 대한민국은 단절돼 있다. 도대체 18~19세기 흥륭했던 이서구, 유득공, 이덕무, 이옥 등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전통은 어디로 갔을까. 일민미술관(02-2020-2055)에서 여는 ‘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한다’(11월9일~2008년 2월3일) 전시회는 그 답이다. 정해창(1907~1967)은 1929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개인전을 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광화문빌딩 2층에서 사흘간 풍경과 풍속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었다. 당시 신문들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1931년, 34년에 이어 39년 4회 개인전인 ‘정해창사진인화개인전’을 화신백화점 7층에서 열었다. 이때의 사진들은 2×3 직사각형뿐 아니라 부채꼴, 원형, 8폭 병풍도 있었다.
‘풍속’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은 14일치 44면에 출고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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