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한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에게는 '20세기 발레의 혁명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는 무용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철학적 주제와 사회적 이슈를 작품에 담았고 꾸준히 금기에 도전하는 작품을 내놓으면서 세계 무용계의 대스타로 추앙받았다.
1927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에 연극과 오페라에 빠졌다가 무용을 접한 뒤 발레로 방향을 틀었다.
18세에 마르세유 발레단에 입단했고 스웨덴 왕립발레단에서도 활동했던 그는 고전 발레와 결별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출세작인 '한 남자를 위한 교향악'(55년)을 시작으로 '봄의 제전'(59년), '볼레로'(60년),'현재를 위한 미사'(67년) 등 무용사전에 오른 주요 작품만 50여편에 이르고 전체 안무작도 250편이 넘는다.
고인의 가장 큰 예술적 공로 중 하나는 남성 무용수의 지위를 높였다는 것. 한 세기가 넘도록 여성 무용수의 그늘에 가려 보조적 역할을 해온 남성 무용수를 무대 중앙으로 이끌어내 이들의 관능미와 아름다움을 작품에 부각시켰다.
또 '현재'를 수용해 전자 음악, 재즈, 아방가르드 음악 등 비전통적 표현기법을 발레와 섞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고전 발레의 전유물인 포인트 슈즈와 정통 기교를 강조해 그의 작품은 현대 발레이면서도 고전적 정형미를 간직하고 있다.
고인은 또 한 사람의 일대기를 주제로 한 일종의 극적 발레를 창안해 '니진스키', '말로', '에바 페론'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1987년 자신을 세계적인 무용가로 키워 준 벨기에를 떠나 스위스 로잔에 정착하고 발레단 이름도 '20세기 발레단'에서 '베자르 발레 로잔'으로 고쳤다. '베자르 발레 로잔'은 2001년과 2005년 한국에서 두 차례 내한 공연을 가졌으나 고인은 각각 심장질환과 고령을 이유로 두번 모두 방한하지 못했다. 그는 오페라와 연극 연출, 영화제작 등에도 손을 댔을 정도로 예술 전반에 재능을 보였으며 뛰어난 글재주로 '무용의 다른 노래', '타인의 생 속의 한 순간', '누구의 인생인가' 등 안무 노트와 무용철학을 담은 책도 출간했다. 1984년 고인의 '20세기 발레단'에서 활동했던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은 고인에 대해 "정말 훌륭한 예술가였다. 제가 안무가의 길을 걷게 된 데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제임스 전은 "특히 고인의 작품 '볼레로'는 더이상 그보다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안무가로서 볼레로 음악을 만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라며 "발레단에 있을 당시 '세상을 떠날 때 내 작품도 함께 무덤에 묻겠다'고 했던 말씀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nanna@yna.co.kr (서울=연합뉴스)
그는 1987년 자신을 세계적인 무용가로 키워 준 벨기에를 떠나 스위스 로잔에 정착하고 발레단 이름도 '20세기 발레단'에서 '베자르 발레 로잔'으로 고쳤다. '베자르 발레 로잔'은 2001년과 2005년 한국에서 두 차례 내한 공연을 가졌으나 고인은 각각 심장질환과 고령을 이유로 두번 모두 방한하지 못했다. 그는 오페라와 연극 연출, 영화제작 등에도 손을 댔을 정도로 예술 전반에 재능을 보였으며 뛰어난 글재주로 '무용의 다른 노래', '타인의 생 속의 한 순간', '누구의 인생인가' 등 안무 노트와 무용철학을 담은 책도 출간했다. 1984년 고인의 '20세기 발레단'에서 활동했던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은 고인에 대해 "정말 훌륭한 예술가였다. 제가 안무가의 길을 걷게 된 데 큰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제임스 전은 "특히 고인의 작품 '볼레로'는 더이상 그보다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안무가로서 볼레로 음악을 만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라며 "발레단에 있을 당시 '세상을 떠날 때 내 작품도 함께 무덤에 묻겠다'고 했던 말씀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nanna@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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