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희곡·이윤택 연출 ‘달아 달아…’
최인훈 희곡·이윤택 연출 ‘달아 달아…’
작가 최인훈(71)씨와 연출가 이윤택(55·서울예술단 대표감독)씨가 연극무대에서 만났다.
서울시극단(예술감독 신일수)이 창단 10돌 기념공연으로 최인훈씨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12월1일부터 16일까지 새로 개관하는 세종 엠시어터(옛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우리 고전의 대표인물 심청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나 창녀로 설정하고 용궁이 아닌 중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삼는 등 캐릭터와 줄거리를 현대적으로 비틀었다.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데 필요한 공양미 300석을 마련하려고 스스로 청나라에 팔려가 여러 나라 남자들을 상대하는 창녀로 전락한다. 인삼장수 김서방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오다 해적에 붙잡혀 왜구 소굴에 성노리개로 던져진다. 오랜 세월이 지나 늙고 눈먼 떠돌이로 고향으로 돌아와 희망을 잃지 않고 아버지와 김서방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이다.
작가 최인훈씨는 조선에서 시작해서 중국, 일본을 배경으로 침탈과 억압이 지배하던 시대를 가로지르면서 그 속에서 희생되었던 여성의 존재를 그렸다. 억압과 수난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운명과 맞서는 조선 여성의 강인한 의식을 이끌어낸다. 그는 “처음 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효녀 심청을 어떻게 창녀로 그릴 수 있느냐고 반발이 심했는데, 딸이 등 떠밀려 제물이 되는 것이 민족의 아름다운 유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며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 집안을 위해 몸을 파는 것이 오늘날에 비쳐봐도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소설 <광장> <회색인>으로 유명한 최인훈씨는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등 한국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일련의 희곡들을 발표했다. 그의 희곡은 절제된 언어와 고도의 상징성 탓으로 연극 무대로 만들기가 어려운 대본으로 손꼽힌다. 1970~80년대 유덕형, 안민수씨 등 드라마센터의 실험적 연출가들이 무대에 올렸으며, 1990년대 ‘최인훈 연극제’에서 극단 미추의 손진책씨가 연출해 소개했을 뿐이다.
연출가 이윤택씨는 “문학성에 짓눌려 연출가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게 된다”며 “최선생님 작품의 고도로 농축되고 상징화된 언어를 풀어서 연극으로 만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연극 <달아 달아…>는 우리 판소리와 정가, 춤 등이 어우러지는 이윤택씨 특유의 ‘소학지희’란 주제의식을 큰 틀거리로 하되 경극과 용춤, 남도 뱃노래 등 동아시아의 전통 연희들을 버무렸다. 설치미술가 이순종씨가 무대디자인에 참여했고, 서울대 음대 최우정 교수가 음악을 지었다. 소리꾼 염경애(판소리)씨와 김민정(정가)씨가 노래를 맡는다. (02)396-5005.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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