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화가 황재형 ‘쥘 흙과 뉠 땅’전
탄광촌 화가 황재형 ‘쥘 흙과 뉠 땅’전
화가 황재형은 1983년 강원도 태백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 화가 행세는 매양 헛짓이 될 뿐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기 때문”. 혁명전야 러시아 지식인처럼 그는 탄광촌으로 스몄다.
엄마 뱃속 같은 갱에서 탄 알갱이를 골라내며 도시락을 비웠다. 터놓은 농담에 실없이 나오는 웃음 속의 흰 이, 갱목이 울자 그를 후려쳐 한쪽으로 미끄러뜨려 구해준 동료, 귀갓길에 취해 걸어가는 그에게 동료가 쥐어준 동전 3백원. 그것이 황재형을 묶어 ‘광원 화가’가 됐다. 그는 고한의 성당복지관 담장에 18미터 길이의 벽화를 만들고, 광원 자녀들을 모아 ‘동발지기’라는 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16년 만의 개인전이다. ‘쥘 흙과 뉠 땅’ 전(내년 1월 6일까지, 가나아트센터).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 없어 미뤄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84년 이래 탄광그림을 총정리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 입촌 당시 346곳이던 탄광이 2006년 현재 7곳뿐. 탄광 종사자 역시 6만여명에서 5940명으로 10분의 1로 줄었다. 이제 탄광촌은 쓸쓸함을 지나쳐 카지노로 변해 또 다른 막장 인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가 10여년 전 그림을 덧칠하는 사이 또다른 작가가 같은 주제로 이름을 얻기도 했다.
황재형과 그의 작품은 그래서 화석이다. 어쩌겠는가 시류에 영합하지 못하는 천성인 것을. 그림 역시 시커먼 물이 흐르는 개울, 탄가루반 눈반의 회색 눈보라, 떠나온 집과 버려진 집, 노을녘 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내, 헤드랜턴 불빛 아래 도시락을 까는 광원들…. 탄가루를 안료로 써 칙칙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개울물은 저녁 햇볕에 금빛이고, 층층 ‘하코방’ 앞에 백일홍이 피었고, 뒷모습 사내의 구붓한 어깨에 슬픔이 내려 앉았다. 한 시대를 툭 잘라 이토록 절박하게 갈무리한 예가 있던가. 작가는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잠자리가 편안한 사람들에게는 각성을, 잠자리가 편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휴식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