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70년이 지나도 지지 않는 ‘무지개’

등록 2007-12-06 20:56

주디 갈런드의 〈오버 더 레인보〉(1939)
주디 갈런드의 〈오버 더 레인보〉(1939)
[세상을 바꾼 노래] ⑨ 주디 갈런드의 〈오버 더 레인보〉(1939)
주디 갈란드의 <오버 더 레인보우>(1939)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였다는 1939년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골라내라는 것은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을 내놓으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면 아마도 비평가들은 장 르누아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을, 관객들은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라면 얘기가 다르다. <오즈의 마법사>가 첫손에 꼽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버 더 레인보우>가 담겨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미국레코딩산업협회가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미국영화연구소가 “20세기 최고의 영화음악”으로 선정한 바 있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오즈의 마법사>와 주디 갈란드를 불멸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킨 마법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출연했을 당시 주디 갈란드(1922~1969)는 17살에 불과했다. 이후 47살에 이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는 한 순간의 예외도 없이 <오버 더 레인보우>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불평은 없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대표곡 <마이 웨이>를 족쇄처럼 여겼던 것과는 달리, 갈란드는 그 노래를 평생의 동반자로 간주했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수도 없이 불렀지만 여전히 내 마음 가장 가까운 곳에는 그 노래가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노래를 변주하는 것조차도 금기시했다. 영화 속의 도로시가 그랬던 것처럼, 무대 위의 갈란드는 언제나 원전악보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버 더 레인보우>가 ‘주디 갈란드의 노래’로 우선시되는 이유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디 갈란드의 강렬한 존재감 때문에 <오버 더 레인보우>가 원작자들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노래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공개적인 좌파였던 작곡가 해롤드 알렌과 작사가 에드가 하버그는 이 노래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대한 기대감의 표현이라 간주했다. 특히, 대공황기의 최대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브라더, 캔 유 기브 미 어 다임?>에서 이미 좌파적 이상을 피력한 바 있었던, 하버그는 달콤한 노랫말 사이에 정치적 메타포를 심기 위해 고심했다. 그런데 주디 갈란드의 앳된 목소리와 이웃집 소녀 이미지가 달콤함을 돋보이게 만든 나머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동화 같은 꿈의 세계로 이월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오버 더 레인보우>의 가치를 방증한다. 노래의 생명력은 그 자체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로만도 에바 캐시디의 리메이크 버전, 임펠리테리의 연주곡 버전, 이스라엘 카마카위워올레의 메들리 버전이 <오버 더 레인보우>에 새로운 관객을 끌어 모았다. 동화극의 배경음악인 동시에 동성애자 클럽의 찬가로 불리는 노래는 흔치 않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힘이다.

인기 있는 노래와 가치 있는 노래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노래라면 그 자체로 가치를 입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생 <오버 더 레인보우>를 품고 살아야 했던 주디 갈란드의 숙명 또한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판명된 것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