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갈런드의 〈오버 더 레인보〉(1939)
[세상을 바꾼 노래] ⑨ 주디 갈런드의 〈오버 더 레인보〉(1939)
주디 갈란드의 <오버 더 레인보우>(1939)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였다는 1939년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골라내라는 것은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을 내놓으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면 아마도 비평가들은 장 르누아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을, 관객들은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라면 얘기가 다르다. <오즈의 마법사>가 첫손에 꼽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버 더 레인보우>가 담겨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미국레코딩산업협회가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미국영화연구소가 “20세기 최고의 영화음악”으로 선정한 바 있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오즈의 마법사>와 주디 갈란드를 불멸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킨 마법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출연했을 당시 주디 갈란드(1922~1969)는 17살에 불과했다. 이후 47살에 이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는 한 순간의 예외도 없이 <오버 더 레인보우>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불평은 없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대표곡 <마이 웨이>를 족쇄처럼 여겼던 것과는 달리, 갈란드는 그 노래를 평생의 동반자로 간주했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수도 없이 불렀지만 여전히 내 마음 가장 가까운 곳에는 그 노래가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노래를 변주하는 것조차도 금기시했다. 영화 속의 도로시가 그랬던 것처럼, 무대 위의 갈란드는 언제나 원전악보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버 더 레인보우>가 ‘주디 갈란드의 노래’로 우선시되는 이유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디 갈란드의 강렬한 존재감 때문에 <오버 더 레인보우>가 원작자들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노래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공개적인 좌파였던 작곡가 해롤드 알렌과 작사가 에드가 하버그는 이 노래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대한 기대감의 표현이라 간주했다. 특히, 대공황기의 최대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브라더, 캔 유 기브 미 어 다임?>에서 이미 좌파적 이상을 피력한 바 있었던, 하버그는 달콤한 노랫말 사이에 정치적 메타포를 심기 위해 고심했다. 그런데 주디 갈란드의 앳된 목소리와 이웃집 소녀 이미지가 달콤함을 돋보이게 만든 나머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동화 같은 꿈의 세계로 이월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오버 더 레인보우>의 가치를 방증한다. 노래의 생명력은 그 자체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로만도 에바 캐시디의 리메이크 버전, 임펠리테리의 연주곡 버전, 이스라엘 카마카위워올레의 메들리 버전이 <오버 더 레인보우>에 새로운 관객을 끌어 모았다. 동화극의 배경음악인 동시에 동성애자 클럽의 찬가로 불리는 노래는 흔치 않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힘이다.
인기 있는 노래와 가치 있는 노래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 노래라면 그 자체로 가치를 입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생 <오버 더 레인보우>를 품고 살아야 했던 주디 갈란드의 숙명 또한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판명된 것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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