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철민, 최덕문, 박원상씨.
연출 데뷔작 ‘늘근도둑 이야기’
영화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36) 감독이 연극 연출가로 데뷔한다. 1월4일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무대에 오르는 <늘근도둑 이야기>가 그의 첫 연극연출 도전작이다. 동숭아트센터 건너편 대학로연습장에서 한달 넘게 배우들과 씨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권력자에 대한 풍자·해학 그린
이상우표 시사코미디의 진수
“배우들 호흡 끝까지 지켜보는게
영화 뛰어넘는 연극의 매력” “영화를 하면서 큰 벽을 많이 느꼈어요. 감독은 배우들의 감정을 인도하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 그런 게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를 더 관찰해야 하는데’, ‘배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데’ 하고 늘 아쉬워했죠. 그런 차에 조재현씨가 연극을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덥석 약속을 해버렸어요.” 그는 “연극의 매력은 배우들의 호흡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데 있다”며 연극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에둘러 설명했다. “이윤택 선생님이나 이상우 선생님도 연극을 하다 영화쪽에 오셨잖습니까. 이제는 영화나 연극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늘근도둑 이야기>는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 위트가 장기인 ‘이상우(극단차이무 대표)표’ 시사코미디의 간판작품. 군사정부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1989년 동숭아트센터 개관 기념 ‘제1회 동숭연극제’ 초청작으로 초연돼 권력자들의 위선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공격으로 화제를 불렀던 작품이다. 강신일, 문성근씨의 초연 이후 명계남, 박광정, 유오성, 정은표, 박진영, 이대연씨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거쳐갔다. 작품 줄거리는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뒤 석가탄신일 특사로 풀려나온 어수룩한 두 늙은 도둑이 권력자 ‘그 분’의 미술관에 멋모르고 숨어들었다 붙잡혀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젊은 수사관에게 조사받는 과정을 담았다. 있지도 않는 범행 배후와 있을 수도 없는 사상적 배경을 밝혀내려는 수사과정에서 두 늙은 도둑의 한심하고 막막한 변명이 뼈있는 웃음을 이끌어내는 부분이 코미디의 절정이다. 미술관이 연극의 배경인 점이 요즘 신정아씨 문제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삼성그룹의 미술품 구입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게 되지 않겠냐고 김감독은 묘한 암시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영화감독은 왜 이 작품을 골라 연극판에 뛰어들었을까? 김지훈 감독은 “2003년 <늘근도둑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과 배우, 연출이 모두 행복한 작품이라 생각돼 참 행복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이상우 선생님이 워낙 큰 산이어서 몹시 부담된다”고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늘근도둑 이야기>를 쓴 연출가 이상우씨는 <칠수와 만수> <비언소> <돼지사냥> <마르고 닳도록> <거기> 등 숱한 화제작과 올해 연극 <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늘근도둑 이야기> 초연 이후 처음으로 본인 연출이 아닌 타인에게 연출을 맡긴 것도 연극계에서는 화제다. “직접 말씀드리기 어려워 차이무 대표인 민복기 선배 통해 부탁을 드렸죠. 쉽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허락하셨어요. 제 개인적인 판단에는 이 선생님이 ‘젊은놈이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늘근도둑 이야기>는 풍자가 주제다. 그러나 서슬퍼렇던 시절이 지나간 지금 과연 풍자의 맛이 유효할까. 그는 “<늘근도둑 이야기>가 지금 봐도 그 감각들이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새로운 변화를 당연히 추구한다. “예전 어두운 시대에는 함부로 말을 못했기 때문에 꼬아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열려있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화두는 풍자보다는 역설, 더 나아가 역설을 넘어선 ‘위치 바꾸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도둑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도둑들의 이야기가 진실될 수 있는 ‘역할 바꾸기’,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번 공연에는 그와 <화려한 휴가> <목포는 항구다>를 함께 찍은 배우 박철민을 비롯해 유형관, 박원상, 정경호, 최덕문씨 등 이른바 연극계 출신 ‘김지훈 사단’ 배우들이 출연한다. 박철민과 최덕문씨는 2003년 3월 공연에서 ‘덜늘근도둑’과 ‘수사관’으로 나와 코믹연기가 걸쭉한 에드리브로 인기를 모았다.
“연극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숨쉬는 끼, 우리 안에 숨쉬는 어떤 에너지가 배우를 통해서 재확인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수동적으로 느끼는 감동이 아니라 우리의 한때의 원시성이었던 감격과 잃어버린 행복을 찾기를 바랍니다.” (02)741-3391.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이상우표 시사코미디의 진수
“배우들 호흡 끝까지 지켜보는게
영화 뛰어넘는 연극의 매력” “영화를 하면서 큰 벽을 많이 느꼈어요. 감독은 배우들의 감정을 인도하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 그런 게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를 더 관찰해야 하는데’, ‘배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데’ 하고 늘 아쉬워했죠. 그런 차에 조재현씨가 연극을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덥석 약속을 해버렸어요.” 그는 “연극의 매력은 배우들의 호흡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데 있다”며 연극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에둘러 설명했다. “이윤택 선생님이나 이상우 선생님도 연극을 하다 영화쪽에 오셨잖습니까. 이제는 영화나 연극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늘근도둑 이야기>는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 위트가 장기인 ‘이상우(극단차이무 대표)표’ 시사코미디의 간판작품. 군사정부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1989년 동숭아트센터 개관 기념 ‘제1회 동숭연극제’ 초청작으로 초연돼 권력자들의 위선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공격으로 화제를 불렀던 작품이다. 강신일, 문성근씨의 초연 이후 명계남, 박광정, 유오성, 정은표, 박진영, 이대연씨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거쳐갔다. 작품 줄거리는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뒤 석가탄신일 특사로 풀려나온 어수룩한 두 늙은 도둑이 권력자 ‘그 분’의 미술관에 멋모르고 숨어들었다 붙잡혀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젊은 수사관에게 조사받는 과정을 담았다. 있지도 않는 범행 배후와 있을 수도 없는 사상적 배경을 밝혀내려는 수사과정에서 두 늙은 도둑의 한심하고 막막한 변명이 뼈있는 웃음을 이끌어내는 부분이 코미디의 절정이다. 미술관이 연극의 배경인 점이 요즘 신정아씨 문제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삼성그룹의 미술품 구입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게 되지 않겠냐고 김감독은 묘한 암시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김지훈 감독, 연극으로 ‘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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