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캐럴이 있나요?
문화·예술인들의 성탄·연말 추천곡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가 또다른 명절처럼 느껴진다. 크리스마스를 ‘쇠기’위해 우리는 울긋불긋해진 12월의 밤거리를 헤맨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1달씩 내서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는 먼 나라 얘기를 부러워하며, 한국인들은 더욱 바빠지고 쉽게 취한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생각나는 음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혹시 음악에 타임머신 기능이 장착돼 있지 않을까 해서다. 남루한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진리’가 넘치는 곳으로 데려다 줄.
고단한 한 해 부드럽게 달래줄 선율 이준익(영화감독) =에릭 클랩튼 ‘대니 보이’
아일랜드 민요인 ‘대니 보이’는 전쟁터에 나간 자식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아주 처연하게 들려준다. 간절함이 넘치면 처연해진다. 이 노래를 들으면 김원두 감독이 떠오른다. 18년전쯤 한남동 ‘가을’이라는 카페에서 그 분이 피아노를 치며 이 노래를 불렀다. 영화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노래 부르는 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그분은 이제 돌아가셨지만 노래는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 <님은 먼 곳에>의 주제가로 쓰려고 하루에 10번도 더 들으며 요즘 이 노래에 젖어 살고 있다. 대니 보이 연주는 수십가지 버전이 있지만 에릭 클랩튼의 연주를 추천한다. 연말에 들으면 서럽고 고단했던 한 해를 기타 선율로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크리스마스에 듣냐고? 인생은 원래 슬픔 속에서 아름다운 것 아닌가?
그립고 적막한…우리 인생노래처럼
정수년(해금연주가)= 강준일 ‘사월(思月)’
한해를 보내며 아쉬움 속에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지난해 12월 25일, 고독과 고통의 긴 터널속에서 절박하게 독주회를 치렀다. 그해 7월 갑작스런 암선고를 받고 ‘해금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울고 또 울었다. 긍정적 결과가 나왔지만, 연주란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기를 모아 집중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그러나 무대에서 꽉찬 열기에 용기를 얻었고, ‘사월’을 연주하면서 살아야 함을 느꼈다. 작곡자(강준일)가 많은 악상을 제시하였는데, ‘그리움’을 시작으로 ‘간절하게’ ‘생각에 젖어’ ‘가슴속 깊이’ ‘연민을 가지고’ ‘후회하듯’ ‘격동적으로’ ‘절규하듯이’ ‘모두 떨쳐버리고’ ‘탄식하듯이’ ‘적막하게’로 끝맺는다. 이 악상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노래이기도 하지 않은가! 적막함은 희열과 새로운 삶의 의지를 낳는다. 올해는 <모노로그>라는 공연을 올렸고, 음악적 고통 속에 희망을 느꼈다. 그 길은 어김없는 나의 길이리라.
떠난 이들의 음성을 다시 듣는 듯
안치운(호서대학교 교수, 연극평론가)= 구스타프 말러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이 노래는 말러가 뤼케르트의 시에다 곡을 붙인, 숭고하고 눈물겨운 이별사이다. 올 해 몇몇 지인들을 잃고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를 줄창 들었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우리들 곁을 떠난 그들 역시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떠들썩한 세상의 동요로부터 죽었고, 고요의 나라 안에서 평화를 누리네. 나의 하늘 안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오. 내 사랑의 품에서, 내 노래의 품에서…”라고. 삶의 끝은 침묵이다. 노래가 눈물을 흘린다. 한 해 끝자락, 이 노래를 들으며 음악은 묵상과 같은 근본적 체험이라는 것을 절로 깨닫는다.
첫사랑은 갔어도 추억은 남았네요
윤도현(가수) =조지 마이클 ‘키씽 어 풀’
학창시절 첫 여자친구를 사귈 때 즐겨 듣던 노래다. 가을에 만나서 겨울까지 사귀고 봄이 되면서 헤어졌는데, 그때 카페에 가면 항상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와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대표적인 겨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한국 가수들이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거나 앨범에서 리메이크하기도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고 불리는 걸 보면 클래식처럼 남는 명곡이 아닐 수 없다. 재즈나 스윙 분위기의 곡이어서 내가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아세요?
구자범(하노버국립오페라극장 수석상임지휘자)= 아돌프 찰스 아당 ‘오 거룩한 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롤들은 대부분 미국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근본주의적 기독교 성향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색채가 혼합돼 있다.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구세주 탄생의 본래 의미는 사라지고, 그저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세속적 실용음악으로 변해버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당(Adam)의 ‘오 거룩한 밤’은 미국 캐롤들과는 달리 그나마 성탄의 의미를 잘 간직하고 있는 프랑스 노래인데, 이것조차 우리에게는 미국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그 진정한 뜻이 많이 왜곡됐다. 1, 2, 3절 모두 동일하게 ‘무릎꿇고 저 천사 노래 듣세’라고 낭만적으로 번역된 영어본과 달리, 원래 프랑스어 가사는 매우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3절은 ‘민중이여, 일어나 너희의 해방을 노래하라’이다. 그저 따뜻한 줄로만 알았던 낭만적 노래가, 사실은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가슴 뭉클해지도록 뜨거운 노래였던 것이다.
그늘진 세상에도 “메리 크리스마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톰 웨이츠 ‘크리스마스 카드 프롬 어 후커 인 미니아폴리스’
우체국 직원이기도 했던 작가 찰스 버코우스키의 시를 바탕으로 한 이 노래는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담담하기에 더욱 서글픈 그 노랫말에 가슴 저릿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톰 웨이츠의 걸쭉하고 처절한 목소리다. 크리스마스가 오히려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 한번쯤 그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노래다.
정리/이재성 기자 san@hani.co.kr
고단한 한 해 부드럽게 달래줄 선율 이준익(영화감독) =에릭 클랩튼 ‘대니 보이’
이준익(영화감독)
정수년(해금연주가)= 강준일 ‘사월(思月)’
정수년(해금연주가)
안치운(호서대학교 교수, 연극평론가)
윤도현(가수)
구자범(하노버국립오페라극장 수석상임지휘자)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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