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국립극단 제공
현대인 일상 새롭고 섬세하게 그려
거대담론 사라진 한국무대 새 자극
거대담론 사라진 한국무대 새 자극
소설에 이어 연극에서도 ‘일류’가 거세게 불고 있다. 국내 연극무대에 오르는 외국작품이라면 늘 영미권에 집중되어 왔는데, 최근 몇년새 일본 연극이 한국 연극판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작품에 목말라하는 관객들에게 일본 연극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가면서 우리 연극판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 연극붐은 2000년대 중반 시작해 2007년까지 꾸준히 이어지며 해를 넘겨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 무대에 오른 일본 연극은 10여편에 이른다. 마쓰다 마사타카의 <바다와 양산>(연출 송선호)을 비롯해 이노우에 히사시의 <달님은 이쁘기도 하셔라>,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물고기의 축제>, 오쿠다 히데오 원작의 <닥터 이라부> 등이 공연됐다.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일본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에에자나이카>는 재일동포 연출가 김수진의 연출로 연극으로 만들어져 지난해 상반기 밀양연극촌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됐다.
연말연시에도 재일동포 극작가 정의신의 <겨울 해바라기>(연출 이상직)가 국립극단 특별기획공연으로 6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무대에서 공연중이며, 이 작품에 이어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겸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3부작 시리즈의 완결편 ‘발칸동물원편’(연출 성기웅)이 10일부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라 일본 연극들이 2008년 연극무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어 5월에도 히라타 오리자의 <도쿄노트>가 <서울노트>로 각색돼 공연하는 등 여러 일본 연극이 국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일본연극들이 최근 우리 연극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섬세하게 현대인의 일상과 심리를 포착해내는 일본 연극 특유의 강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본 현대 연극의 주요한 흐름인 ‘조용한 연극’이 국내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연극평론가 노이정씨는 “최근 몇년간 <바다와 양산> <서울노트> <과학하는 마음> 등 90년대 일본 연극계에서 새로운 경향으로 떠오른 ‘조용한 연극’이 한국에서 자주 공연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조용한 연극’으로 대표되는 일본연극은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의 문제들을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한국연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적이고 서정적인 매력이 국내 연출가와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일본연극이 강세를 띠는 것은 그동안 우리사회가 관심가져온 거대담론이 쇠퇴한 것도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평론가 김명화씨는 “21세기 들어 민주화나 인권문제 등 거대 담론이 사라지면서 일상으로 관심이 쏠리는 경향과 맞물려 현대인의 삶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서정적인 일본연극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근 몇년새 활발하게 진행된 한·일 연극계의 교류뿐만 아니라 한류와 연관돼 높아지고 있는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도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기웅 연출가도 “90년대 현대사회의 소외된 군상들의 고독을 집요하게 파헤쳐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유행하고 최근 일본영화가 국내에서 젊은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과도 맥이 닿는다”고 말했다.
현재 공연중인 <겨울 해바라기>와 공연을 앞둔 <과학하는 마음>은 모두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다. 앞서 선보였던 <바다와 양산>의 경우도 일본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일상적인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큰 호응을 얻어 재공연까지 들어갔다.
이 연극들은 복잡한 연극적 장치나 과장 없이 배우들의 몸짓과 대사만으로 일상과 고민을 자연스럽게 묘사해 현실과 흡사하게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지극히 조용하고 일상적인 흐름이 진행되는 공간에서 배우들과 함께 숨 쉬며 배우들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공감하게 된다. <서울노트>(원작 <도쿄노트>)를 봄에 무대에 올릴 예정인 극단 파크의 박광정 대표는 “일본연극은 작가의 주제를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사실적이고도 세밀하게 그려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성기웅 연출가는 “감정을 절제하면서 세밀한 관찰력으로 관객들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일본 연극의 강점이 현대인의 감성과 맞닿아 있어 일본 연극의 강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이 연극들은 복잡한 연극적 장치나 과장 없이 배우들의 몸짓과 대사만으로 일상과 고민을 자연스럽게 묘사해 현실과 흡사하게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지극히 조용하고 일상적인 흐름이 진행되는 공간에서 배우들과 함께 숨 쉬며 배우들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공감하게 된다. <서울노트>(원작 <도쿄노트>)를 봄에 무대에 올릴 예정인 극단 파크의 박광정 대표는 “일본연극은 작가의 주제를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사실적이고도 세밀하게 그려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성기웅 연출가는 “감정을 절제하면서 세밀한 관찰력으로 관객들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일본 연극의 강점이 현대인의 감성과 맞닿아 있어 일본 연극의 강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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