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 사진전’의 비누 작품
‘구본창 사진전’의 비누 작품 19점
백자에 깃든 ‘시간’ 탐구했던 작가
비누 표면 긁힘·줄어드는 크기 주목
“소멸되며 축적되는 숭고함이 매력” 지난 해 말 달항아리 두 점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됐다. 삼성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 둥두렷이 딱 보름달 형상인데다 후덕함이 대갓집 맏며느리 같아서 ‘달항아리’다. 고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국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예찬했던 달항아리는 1991년 처음 국보로 지정된 뒤 이후 발견되는 족족 국보나 보물 등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돼왔다. 사진작가 구본창씨는 2006년부터 이 달항아리를 사진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27일까지 열리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한국미술-여백의 발견’전에는 금번 국보 309호로 지정된 삼성의 달항아리 맞은 편에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이 전시돼 있다. 실제 백자 크기보다도 훨씬 큰 그의 달항아리 사진은 실물과는 다른 또다른 느낌으로 새로운 달항아리를 구현한다. 그런 ‘조선 백자의 작가’ 구본창이 이번에는 비누 사진을 들고 나왔다.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 개관 기념으로 여는 ‘구본창 사진전’(2월17일까지)에서 그는 기존 화이트, 바다, 백자, 인테리어, 오브제 시리즈 등 기존 시리즈와 함께 새로운 시리즈로 비누를 선보이고 있다. ‘당당한’ 백자에서 ‘하찮은’ 비누로 소재가 바뀌다니 뜻밖이다. 구본창이 일관되게 탐구해 온 것은 ‘시간’. 긴 오후의 미행(1988), 생각의 바다(1990), 굿바이 파라다이스(1993), 인 더 비기닝(1995), 숨(1995), 흐름(1999), 깨지기 쉬운 떨림(2002), 가면(2003), 화이트(2004), 시간의 초상(2005), 백자(2006) 등 지금까지의 전시회에서 시간을 빼면 무의미하다. 탈, 백자 등 최근의 인상적인 작업 때문에 그의 작품이 전통미의 발견에 무게를 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추구한 것은 이미지라기보다 그 속에 담긴 시간의 미약한 떨림이었던 것. 백자의 표면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긁힘과 균열에서 시간의 흔적을 담아냈듯이, 이번에 비누와 함께 전시되는 인테리어, 오브제 시리즈 역시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 필요없는 물건이 된 뒤끝 등 시간이 주제다. “백자가 100년, 500년에 걸쳐 표면에 시간을 묻힌다면 비누는 한 달 안팎에 걸쳐 시간을 담아냅니다. 백자는 형태에서 시간을 담지 못하지만 비누는 점점 줄어들면서 형태에서도 시간을 담지요.” 지난 11일 서울 소격동 한 화랑에서 만난 그는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호텔, 카페 등 화장실에서 만난 비누의 묘한 모양과 색깔에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백자의 갈라짐과 긁힘처럼 비누 표면에도 똑같은 흔적을 발견했다. 그 뒤 집밖에서는 시간이 담긴 비누를 하나 둘 주워 들였고 집안에서는 쓰던 비누를 관찰하며 사용 중단할 결정적인 순간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열두 개 들이 상자가 쌓여갔다.
“버리지 않고 쌓아두다 보니 이야기가 생기더군요. 소멸되면서 되레 축적되는 시간 외에 스스로 없어지면서 때를 벗겨내는 숭고함까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번에 건 비누사진은 19점. 가로 세로가 1미터 안팎인 작지 않은 크기다. 압도적으로 커진 크기와 아름다운 형태 탓에 도대체 비누라고 생각할 수 없다. 수석이냐, 보석이냐고 묻는 관객도 있다. 수석(보석)을 자연에서 찾아낸 자연의 손길이라면 비누는 세간에서 찾아낸 사람의 손길이다. 값을 많이 쳐주느냐 그렇지 않으냐 차이가 있을 뿐 아름답기는 매일반이다. “카메라를 안 썼어요. 필름이라는 중간 과정 없이 평판 스캐너에서 흰종이를 씌운 다음 막바로 긁었어요. 질감을 보여주기에는 아주 적절한 방식이더군요.” 그래서 비누작품에는 백자와 달리 그림자가 없을 뿐더러 배경 즉 콘텍스트 없이 형태와 색깔만 오롯하다. 백자 자체가 문화 또는 전통과 불가분한 반면 공산품인 비누는 그런 짐이 없다. 또 백자는 도공과 박물관의 몫이 크지만 비누는 거의 구본창 몫이다. 시간의 발견인 점에서 저작권을 오로지 주장해도 무방하다. “사실은…, 비누는 백자의 후속작업이 아니라 백자 작업을 위한 밑그림이었어요.” 그는 뜻밖의 사실을 털어놨다. 장소, 시간 등 제약이 많은 백자 촬영을 위해서 성질은 비슷하지만 쉽게 다룰 수 있는 비누로 예행연습하기 위해서 함께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작은 그렇지만 그것을 통해 일상의 물건을 새롭게 보는 방식을 발견했으니 그로서는 뜻밖의 횡재다. 백자보다 더 현대적이라는 주위의 평가에 고무된 작가는 비누작품을 시리즈로 확장할 생각이다. 또 언젠가는 작품과 그 모델을 비교해 전시할 생각도 있다. 하찮은 비누에서 값비싼 작품을 뽑아내는 구본창은 마이다스인가. 금요일, 눈이 오던 그날도 작가는 디카로 눈덮인 종로의 한옥지붕을 찍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비누 표면 긁힘·줄어드는 크기 주목
“소멸되며 축적되는 숭고함이 매력” 지난 해 말 달항아리 두 점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됐다. 삼성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 둥두렷이 딱 보름달 형상인데다 후덕함이 대갓집 맏며느리 같아서 ‘달항아리’다. 고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국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예찬했던 달항아리는 1991년 처음 국보로 지정된 뒤 이후 발견되는 족족 국보나 보물 등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돼왔다. 사진작가 구본창씨는 2006년부터 이 달항아리를 사진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27일까지 열리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한국미술-여백의 발견’전에는 금번 국보 309호로 지정된 삼성의 달항아리 맞은 편에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이 전시돼 있다. 실제 백자 크기보다도 훨씬 큰 그의 달항아리 사진은 실물과는 다른 또다른 느낌으로 새로운 달항아리를 구현한다. 그런 ‘조선 백자의 작가’ 구본창이 이번에는 비누 사진을 들고 나왔다.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 개관 기념으로 여는 ‘구본창 사진전’(2월17일까지)에서 그는 기존 화이트, 바다, 백자, 인테리어, 오브제 시리즈 등 기존 시리즈와 함께 새로운 시리즈로 비누를 선보이고 있다. ‘당당한’ 백자에서 ‘하찮은’ 비누로 소재가 바뀌다니 뜻밖이다. 구본창이 일관되게 탐구해 온 것은 ‘시간’. 긴 오후의 미행(1988), 생각의 바다(1990), 굿바이 파라다이스(1993), 인 더 비기닝(1995), 숨(1995), 흐름(1999), 깨지기 쉬운 떨림(2002), 가면(2003), 화이트(2004), 시간의 초상(2005), 백자(2006) 등 지금까지의 전시회에서 시간을 빼면 무의미하다. 탈, 백자 등 최근의 인상적인 작업 때문에 그의 작품이 전통미의 발견에 무게를 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추구한 것은 이미지라기보다 그 속에 담긴 시간의 미약한 떨림이었던 것. 백자의 표면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긁힘과 균열에서 시간의 흔적을 담아냈듯이, 이번에 비누와 함께 전시되는 인테리어, 오브제 시리즈 역시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 필요없는 물건이 된 뒤끝 등 시간이 주제다. “백자가 100년, 500년에 걸쳐 표면에 시간을 묻힌다면 비누는 한 달 안팎에 걸쳐 시간을 담아냅니다. 백자는 형태에서 시간을 담지 못하지만 비누는 점점 줄어들면서 형태에서도 시간을 담지요.” 지난 11일 서울 소격동 한 화랑에서 만난 그는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호텔, 카페 등 화장실에서 만난 비누의 묘한 모양과 색깔에 주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백자의 갈라짐과 긁힘처럼 비누 표면에도 똑같은 흔적을 발견했다. 그 뒤 집밖에서는 시간이 담긴 비누를 하나 둘 주워 들였고 집안에서는 쓰던 비누를 관찰하며 사용 중단할 결정적인 순간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열두 개 들이 상자가 쌓여갔다.
“버리지 않고 쌓아두다 보니 이야기가 생기더군요. 소멸되면서 되레 축적되는 시간 외에 스스로 없어지면서 때를 벗겨내는 숭고함까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번에 건 비누사진은 19점. 가로 세로가 1미터 안팎인 작지 않은 크기다. 압도적으로 커진 크기와 아름다운 형태 탓에 도대체 비누라고 생각할 수 없다. 수석이냐, 보석이냐고 묻는 관객도 있다. 수석(보석)을 자연에서 찾아낸 자연의 손길이라면 비누는 세간에서 찾아낸 사람의 손길이다. 값을 많이 쳐주느냐 그렇지 않으냐 차이가 있을 뿐 아름답기는 매일반이다. “카메라를 안 썼어요. 필름이라는 중간 과정 없이 평판 스캐너에서 흰종이를 씌운 다음 막바로 긁었어요. 질감을 보여주기에는 아주 적절한 방식이더군요.” 그래서 비누작품에는 백자와 달리 그림자가 없을 뿐더러 배경 즉 콘텍스트 없이 형태와 색깔만 오롯하다. 백자 자체가 문화 또는 전통과 불가분한 반면 공산품인 비누는 그런 짐이 없다. 또 백자는 도공과 박물관의 몫이 크지만 비누는 거의 구본창 몫이다. 시간의 발견인 점에서 저작권을 오로지 주장해도 무방하다. “사실은…, 비누는 백자의 후속작업이 아니라 백자 작업을 위한 밑그림이었어요.” 그는 뜻밖의 사실을 털어놨다. 장소, 시간 등 제약이 많은 백자 촬영을 위해서 성질은 비슷하지만 쉽게 다룰 수 있는 비누로 예행연습하기 위해서 함께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작은 그렇지만 그것을 통해 일상의 물건을 새롭게 보는 방식을 발견했으니 그로서는 뜻밖의 횡재다. 백자보다 더 현대적이라는 주위의 평가에 고무된 작가는 비누작품을 시리즈로 확장할 생각이다. 또 언젠가는 작품과 그 모델을 비교해 전시할 생각도 있다. 하찮은 비누에서 값비싼 작품을 뽑아내는 구본창은 마이다스인가. 금요일, 눈이 오던 그날도 작가는 디카로 눈덮인 종로의 한옥지붕을 찍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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