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 ‘베를린 개똥이’
속이 다 시원하다. 연희단거리패와 독일의 젊은 연극인들이 함께 만든 인형극 <베를린 개똥이>(게릴라 극장·26일까지)는 현재 한국 공연예술계를 암세포처럼 파먹는 상업화나 고급화의 전략에 반항하는 작품이다. 연극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아냈음직한 싸구려 스펀지로 만든 각종 동물 인형을 보여주면서, 연희단거리패의 기존 작품 <산너머 개똥아>의 구조를 통독 이후의 독일 상황으로 신랄하게 변주했다.
작품을 연출한 알렉시스 부크와 스펀지 인형을 만든 독일 헬미극단의 플로리안 로이케는 이 작품이 한국에서의 두 번째 작업이다. 지난 여름에 독일 젊은이들의 정신적 공황과 역사에 대한 채무의식을 유사한 인형극으로 보여준 <귀신놀이>로 밀양연극제와 거창연극제에 첫 선을 보였고, 이번에는 연희단거리패의 젊은 배우들과 함께 새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작품의 소재는 통일. 작가로 참여한 마르쿠스 브라운과 제작진은 이 작업이 두 문화의 상호작업이며 일방적으로 한 쪽이 주도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것을 현명하게 간파했다. 그런 맥락에서 통일을 이미 겪은 독일이나 통일을 앞둔 채 지지부진한 한국 상황에 공통적으로 호소력 있는 소재를 취하고, 시공간의 배경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독일을 취하되 극적 구성이나 인물은 한국의 민속극적 요소를 차용하여 두 문화의 만남에 의미 있는 균형을 유지했다. 지난 몇 년간 문화상호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주체를 상실한 채 진행되었던 일련의 작업들을 상기할 때, 이 소박한 작품이 거둔 균형감은 의외로 큰 수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저 하룻밤의 여흥거리로 소비되기 위하여 화려하게 치장한 연극이 범람하는 시절에 상업성이나 제도화된 미학을 거부하는 거친 연극의 가능성이다. 몇 개의 칸막이만 설치된 가난한 무대, 싸구려 스펀지 인형, 거대한 입으로 괴물인형을 표현하는 연극적 상상력, 거침없는 외설과 풍자적 발언, 맨 얼굴로 인형 조종부터 타령과 춤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 그리고 현실 역사에 무력하게 순응하지 않는 비판과 전복의 정신!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면서 시작했던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괴물에게 잡아먹힌 시민들을 개똥이가 오줌발로 구해내는 장면이다. 그 노골적인 구출 작전 뒤에 히피 같은 개똥이는 괴물 같은 전체주의에 굴하지 말고 개별적 존재로 세상에 저항하고 통일의 방식을 찾아나갈 것을 권고한다. 나보다는 우리 혹은 전체의 입장이 언제나 더 중요한 한국 사회에 의미심장한 충고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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