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림의 1950년대 작품 <여인>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는 1월 23일부터 3월 30일까지 ‘최영림-무나카타 시코’ 전을 연다. 사제 관계인 한-일 두 작가의 작품세계가 무엇이 비슷하고 다른지를 조명하는 전시다. 최영림과 무나카타 시코의 유화, 판화, 드로잉 등 120여점이 걸렸다. 지난해 11월10일~12월24일 일본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에서 열린 바 있다. 일본 전시가 두 작가의 작품을 뒤섞음으로써 유사점에 방점을 두었다면 한국전은 각각 분리 전시하고 일부만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최영림-무나카타 시코’전
스승-제자 두 작가 작품세계 비교
설화·여성 소재와 기법 유사성 속
최영림이 새롭게 창안한 화풍 주목
■ 스승과 제자=1938년 고보를 막 졸업한 최영림은 소개장을 품고 도쿄로 갔다. 소개장을 써준 이는 평양박물관 직원인 오노 다다아키라. 도쿄미술학교 출신인 그는 고구려 고분 조사 등 업무 외에 최영림 등 고보생에게 판화를 가르쳤다.
최영림이 찾은 이는 판화가로 막 이름을 날리던 무나카타 시코. 오노와는 동향(아오모리)에다 동년배 친구. 스물셋 최영림은 도쿄 일본판화협회전, 조선미전 등에 판화와 유화(<시골의 강>)로 두어 번 입선한 풋내기. 서른여섯 무나카타는 <만타보> <야마토 다게루 왕자의 생애> 등 큰 작품을 내고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눈에 띄면서 <화엄보> <도호쿠 지방 귀문보> 등으로 일취월장하던 때였다.
이렇게 맺은 사제관계는 1940년 최영림이 귀국한 뒤에도 이어져 최영림은 가끔 도쿄를 찾아가 지도를 받았다. 해방 뒤 연락이 끊겼던 이들은 1965년부터 편지로써 끈을 이었다. 최영림의 스크랩북에는 스승이 상파울루 비엔날레(1955년)와 베니스 비엔날레(1956년)에서 판화부문 대상을 받은 기사가 보관돼 있었다.
■ 같은 점과 다른 점=최영림과 무나카타 시코는 △민담이나 전설,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에로틱한 여성 누드가 상당수 등장한다 △불교적인 소재가 많다 △고구려 벽화에서 차용한 점이 눈에 띈다 △이채법(종이 뒷면의 채색을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을 썼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민담 소재는 무나카타가 1930~40년대에 판화로 만들지만 최영림은 1960년대 중후반 유화 형식으로 나타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여성 누드 역시 무나카타는 큰 머리통, 하얀 피부, 통통한 살집에다 일본 특유의 패턴화한 장식미로 나타나고 최영림의 여인은 강조된 가슴과 둔부, 꼿꼿한 허리에다 아이를 항상 달고 있는 등 건강한 지모신 성격을 보인다. 불교 소재도 차이를 보여 무나카타는 엄숙하고 교조적이다 못해 패턴화 과정을 밟는 반면 최영림은 구복적이고 민속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벽화 양식은 무나카타가 <화수송>처럼 소재를 차용한 반면 최영림은 산수, 회오리, 연꽃 등 문양을 차용한 점에서 다르다. 무엇보다도 무나카타가 대상을 패턴화하고 작품에서 장식성이 도드라진 반면 최영림은 해학성을 바탕에 깔고 있는 점에서 현격하다.
■ 밑지는 전시? =이 전시는 3년 전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에서 그곳 출신 작가들의 영향력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기획돼 우리 쪽에 제안하였다. 밑지는 장사가 아닐까 우려한 국립현대미술관 쪽은 오랫동안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하여 영향이랄 수 있는 요소가 30년 차를 두고 나타나며 최영림이 유화를 거쳐 판화로 눈을 돌린 것이 국내의 동인에서 비롯된 점 등을 확인하고 수락했다고 전했다.
기혜경 학예연구사는 “대부분의 자료가 두 작가의 영향관계를 한 줄로 정리하고 있으며 그나마 똑같은 문구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동안 한-일 미술의 영향 관계는 들춰내고 싶지 않은 과거로 묻어둠으로써 근대미술사 조명에 커다란 장애가 되어 왔다”며 “이제, 무엇이 우리 것이고 어떤 것이 영향을 받은 것인지, 그런 관계 속에서 새롭게 창안해 낸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 뱀꼬리 감상 포인트=최영림의 황토시대. 황토를 써 토담을 연상시키는 질감에 황소, 건어, 대문 등 전통적인 소재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판화작품 <물동이를 든 여인>은 평양시절 ‘주호회’ 멤버로 함께 활동한 박수근과 비슷한 점이 확인된다. 또 <호랑이이야기> <봄동산> 등에 나오는 천진한 아기 모습은 이중섭의 그것과 흡사하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땄다는, 한국전을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 <1950.6.25>도 관심거리.
무나카타의 <야마토 타케루 왕자의 생애>는 길이가 7미터가 넘는 두루마리 그림. 다 펼치지 못하고 일부만 보여주는 이야기투 판화다. 우리 눈에 익은 12장 화투그림, 히라카나 문자도가 눈길은 끈다.
한쪽 구석에 전시된 두 사람의 자화상.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판화 속 무나카타는 말년에 실명에 이르렀고 담배를 문 황토그림 속 최영림은 후두암으로 타계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스승-제자 두 작가 작품세계 비교
설화·여성 소재와 기법 유사성 속
최영림이 새롭게 창안한 화풍 주목
위부터 최영림 <계절> 부분, <꽃바람>.
하지만 민담 소재는 무나카타가 1930~40년대에 판화로 만들지만 최영림은 1960년대 중후반 유화 형식으로 나타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여성 누드 역시 무나카타는 큰 머리통, 하얀 피부, 통통한 살집에다 일본 특유의 패턴화한 장식미로 나타나고 최영림의 여인은 강조된 가슴과 둔부, 꼿꼿한 허리에다 아이를 항상 달고 있는 등 건강한 지모신 성격을 보인다. 불교 소재도 차이를 보여 무나카타는 엄숙하고 교조적이다 못해 패턴화 과정을 밟는 반면 최영림은 구복적이고 민속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벽화 양식은 무나카타가 <화수송>처럼 소재를 차용한 반면 최영림은 산수, 회오리, 연꽃 등 문양을 차용한 점에서 다르다. 무엇보다도 무나카타가 대상을 패턴화하고 작품에서 장식성이 도드라진 반면 최영림은 해학성을 바탕에 깔고 있는 점에서 현격하다.
무나카타 시코 <우주송> 부분, 아래는 <길상대변재천왕비존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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