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재현 100년’ 전
아르코 극장의 행보가 젊어졌다. ‘새로운 도전’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초부터 실험적 무용과 현대과학에 대해 고민하는 일본의 조용한 연극을 소개하더니, 이번에는 1백여년 전의 작품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한 극단 동의 ‘재현 100년전’ 전을 준비하였다.
문제의 작품은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을 극화한 <테레즈 라켕>과 사실주의극인 헨릭 입센의 <유령>. 극단 연혁이 오래지 않은 젊은 극단인데 녹록지 않은 두 편의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면서 현대 연극의 출발점을 되짚어보는 호기를 부렸다. 그 과정에서 재현과 연극성을 동일시하는 과잉 해석도 엿보였지만, 형식과의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는 젊은 연극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극단 동은 사실주의 연기시스템을 구축한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기술의 현대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집단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표면적 사실주의를 넘어 텍스트에 깃든 내적 충동과 본질을 배우의 몸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덕분에 무대는 몇 개의 파이프와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바닥과 벽을 장식한 단출한 공간이었지만, 배우들의 역동적인 표현과 에너지가 볼만하였다.
특히 정념 때문에 심약한 남편을 죽이고 죄책감 속에서 파멸하는 <테레즈 라켕>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술이나 연출(강량원)이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조형적 움직임과 군더더기 없는 절제력, 삶 자체가 되고자 했던 자연주의 연극의 염원을 보여주려는 듯 실제 성행위를 방불케 하는 재현에 대한 노골적 집착, 바닥에 반사되는 조명과 배우의 몸만으로 연출한 나룻배 장면은 대단히 탐미적이고 연극적이었다.
반면 소설을 극화해서 연출이 개입할 여지가 많았던 <테레즈 라켕>과 달리 대사 중심의 <유령>은 콘셉트를 알 수 없는 어설픈 불발탄이 되고 말았다. 관례적이고 설명적인 대사와 연극적 몸의 길항이 큰 이유였고, 텍스트의 본질을 배우의 몸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가 일관된 흐름을 갖지 못한 채 무책임하게 분절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객석과 무대의 교감을 차단하였다.
새로운 지평을 꿈꾸는 예술가들에게 모든 과정은 점이다. 우리는 성공에만 연연하지만 실패 역시 과정상에 놓인 하나의 점이다. 극단 동의 ‘재현 100년전’전 은 가능성 있는 성공과 의미 있는 실패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 시행착오들이 중단되지 않고 거듭되면서 발전할 때, 비로소 굵직한 선이 그어질 것이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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