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올해의 앨범상’ 받은 허비 행콕.
흑인·주류 쇠퇴 대안 없는 미국
참신한 ‘인디’ 발굴 실패한 영국
침체기 지속되는 현실 ‘한눈에’
참신한 ‘인디’ 발굴 실패한 영국
침체기 지속되는 현실 ‘한눈에’
그래미·브릿 어워드 통해 본 영미음악 현주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고 할 일이 아니다. 먹을 것 없는 잔치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들어맞았다고 해야 옳다. 우리 시각으로 각각 지난 11일과 21일에 막을 내린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 시상식 그래미 어워드와 ‘영국의 그래미’ 격인 브릿 어워드의 결과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새로운 트렌드와 강력한 스타의 부재 상태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 여파가 마침내 대중음악계의 창조적 메커니즘의 작동마저 위축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은 또다른 국면이다. 양대 팝 종주국이 드러낸 ‘위기의 2007년’은 장기간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우리 음악계의 현황과 맞물려 대중음악 산업의 불안한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올해 그래미의 최대 승자는 주요 부문 셋을 합쳐, 모두 다섯 개의 트로피를 쓸어간 에이미 와인하우스였다. 신인으로서는 대단한 성과였지만 이변이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후보로 나란히 지목되었던 뮤지션과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수상했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더 흥미로운 것은, 와인하우스가 영국 출신 백인이라는 점이다. 그래미는 팝 부문으로 분류했지만, 그의 음악적 뿌리가 아르앤비와 솔에 있음은 명백하다. 곧, 국외자인 와인하우스가 미국 흑인의 음악적 정체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스타일로 그 안방을 접수해 버렸다는 말이다. 대중적 측면에서 주류의 흐름을 10년 이상 장기집권하고 있는 미국 흑인음악계가 그 상업적 성공에 안주한 나머지 신선함을 잃은 ‘고인 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허비 행콕이 가져간 ‘올해의 앨범’ 부문도 복기해볼 만한 여운을 남겼다. 스스로 밝히다시피 행콕은 “재즈 뮤지션으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였다. 대중성과 동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 현저하게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재즈 뮤지션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을 만큼 팝과 록 진영의 수확이 변변찮다는 방증이다. 그래미가 가장 선호하는 뮤지션 중 하나라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록에서 세 부문을 제패했음에도 애초에 핵심 부문(올해의 레코드, 앨범, 노래)에는 후보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브릿 어워드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새로운 경향과 신인들에 상대적으로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는 평에 걸맞게 올해도 케이트 내시, 애덜리, 마크 론슨, 악틱 몽키스 등 신진급에게 상을 몰아주긴 했지만 그 무게는 전과 달랐다. 근본적으로 상대평가일 수밖에 없는 시상식의 특성에 가렸을을 뿐, 비전의 결핍이라는 문제가 잠복해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악틱 몽키스는 지난해와 같은 부문 2관왕을 2연패했고, 에이미 와인하우스 또한 영국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평가(최우수 여성 가수)를 받은 상태였다. 기대만큼 새로운 게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꿔 말해 그간 ‘대영제국’ 음악계의 창조적 원천으로 기능했던 인디 계열이 괄목할 산출물을 내지 못했다는 증거인 셈인데,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염려되는 바다.
게다가 전문가위원회가 선정하는 다른 부문과는 달리 팬 투표로 수상자를 가리는 ‘최우수 싱글’과 ‘최우수 라이브 액트’ 영역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오빠들’ 테이크 댓이 트로피 둘을 가져갔다는 사실도 음악적 정체 상태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무색게 만든 요인은 다름 아닌 대안의 부재였다.
다만 위안을 삼을 것은 60년대와 70년대 영국 록 음악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예술학교 출신들의 저력이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최우수 여성 가수’가 된 케이트 내시와 ‘비평가상’의 애덜리를 비롯해서 에이미 와인하우스, 리오나 루이스 등이 모두 같은 예술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만약 그들이 지속적으로 기대에 부응한다면 1997~98년 사이 대서양 양쪽의 음악상을 휩쓸었던 북미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 - 숀 콜빈, 세라 매클라클런, 폴라 콜, 로린 힐, 피오나 애플 등의 영광을 재연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음악계 전반의 침체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장담은 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지력이 쇠하면 작물은 자라지 못하는 게 당연한 법이니까. 그것이 지금 영미 음악계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headlikehole@naver.com
에이미 와인하우스
악틱 몽키스(위), 마크 론슨 (왼쪽), 케이트 내시(아래).
문제는,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음악계 전반의 침체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장담은 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지력이 쇠하면 작물은 자라지 못하는 게 당연한 법이니까. 그것이 지금 영미 음악계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headlikeh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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