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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유롭스키의 섬세한 지휘력에 압도

등록 2008-03-16 18:08

런던필 내한공연
런던필 내한공연
런던필 내한공연
창검 대신 지휘봉이라는 무기를 든 슬라브 대륙의 검은 전사가 음악으로 자신의 특별한 존재감을 증명한 저녁이었다고 할까.

1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런던필하모닉 내한 콘서트의 주인공은 단연 국내에 처음 얼굴을 선보인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였다. 런던필의 상주 작곡가 마크 앤소니 터니지가 쓴 최신작과 그의 스승인 독일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의 작품을 필두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순으로 곡목을 배치한 프로그램이 일단 참신했다.

음반에서 듣던 대로 유로프스키의 지휘 능력은 비상했다. 정확한 손짓 지시로 오케스트라 소리의 강약과 색깔을 능수능란하게 조정했다. 에너지를 응집해 적재적소에서 터뜨리는 순발력이 돋보였고, 음끝을 매만지는 감각은 치밀하면서도 섬세했다. 무엇보다 본인의 요구를 철저하게 관철시키려는 의지가 도드라졌다. 지휘자의 청청한 기운을 수혈 받은 덕분에 런던필은 한결 선뜻한 연주 단체로 탈바꿈했다. 터니지의 ‘한스를 위한 자장가’와 헨체의 ‘두 번째 현악 소나타’에서 유로프스키는 현악군을 하나의 악기처럼 다루어 한 여름 밤의 어두운 꿈같이 스산한 곡조를 명징하게 그려냈다.

백건우와 협연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이날 공연의 절정이었다. 여기서 지휘자는 독주자를 수동적으로 반주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음악에 적극 개입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피아니스트와 완벽하게 호흡이 일치하진 못했으나, 작품의 신랄한 유머는 탄력 있는 리듬감과 긴박한 앙상블로 멋들어지게 표현해냈다. 금관 파트의 강렬한 울림이 발군으로 널찍한 음향공간을 창출했다. 백건우의 연주는 저 유명한 낙소스 레이블의 스튜디오 레코딩과 유사했다. 러시아 본토박이 피아니스트들이 야성적인 타건과 분출하는 혈기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그는 정제된 지성과 확실한 손 움직임으로 승부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스케일 웅장한 전 세대 거장들과 달리 과잉된 감정이입을 경계하는 현대적인 접근의 해석이었다. 템포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작품의 풍부한 선율미를 유려한 흐름으로 부각시키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렇지만 직전에 연주한, 불협화음으로 점철된 프로코피예프가 단원들을 피로하게 한 탓인가. 전반 두 악장에서 합주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지휘자의 리드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다행히 3악장 후반부터 컨디션을 회복해서 피날레를 정열적인 분위기로 마무리지었다.

이영진/고전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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