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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끝없는 점 속으로 사라지다

등록 2008-03-20 21:20

구사마 야요이의 대표작인 <무한그물에 소멸되는 비너스상>
구사마 야요이의 대표작인 <무한그물에 소멸되는 비너스상>
‘땡땡이 작가’ 구사마 야요이전 29일까지
‘땡땡이 작가’ 구사마 야요이(79)의 개인전이 29일까지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02-738-0738)에서 열린다.

한국에서는 200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나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 전이어서 화제가 되지 않았고, 진화랑에서 간간이 그의 작품이 전시되었지만 판화 위주여서 그의 작품세계 전모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탓에 구사마는 그의 여러 작품 유형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땡땡이 점을 찍은 호박그림’ 작가로 알려져 있다. 아트링크 개인전에는 <무한그물> 연작 외에 <무한그물에 의해 소멸된 비너스상>, <핍쇼> 등 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 전시됐다. 그의 작품은 그물과 땡땡이 무늬의 반복 또는 변주, 추상표현주의 또는 미니멀리즘 풍 강렬한 색감과 반복되는 무늬로 인해 들여다보는 동안 현기증과 함께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정신적 질병의 경험 모티브 삼아
강렬한 색감 물방울·그물무늬로
무한반복 속 스스로의 소멸 다뤄

<겨울의 지나감>.
<겨울의 지나감>.
구사마는 삶과 예술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대표적인 작가다. 정신적 질병을 앓는 그는 그것을 승화시켜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으며, 고도의 집착증은 내리 40~50시간을 작업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그림그리기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으며 수난과 절망 속에서의 외침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구사마는 10살 무렵 식탁보의 빨간 꽃무늬를 보고 나서 시선을 옮기니 천장, 창문 등 방안의 모든 것이 같은 무늬로 뒤덮였다고 한다. 그곳에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와 계단으로 도망쳤고, 그때 계단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환각 속에 아래로 굴러 떨어져 발목이 삐는 경험을 했다. 또한 얇은 회색 베일에 휩싸여 들려올려지고 사람들이 멀어지면서 시간, 공간 감각을 잃는 정신적 경험도 했다. 스스로 소멸하는 경험을 한 이상한 아이는 고립되었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을 그려댔다. 반복에 의한 ‘끝없음’ 속에서 스스로 소멸되는 것이 주제. 뒷날 자신의 <무한그물> 연작 앞에서 비슷한 무늬와 색의 옷을 입고 사진찍기를 즐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스로 그림 속으로 스며들면서 사라지는 행위예술로 예전 또는 현재의 상태에 대한 환기다.

무한그물
무한그물
1957년 미국행 역시 살아남기 또는 사라짐의 하나. 억압적인 집안, 가부장적인 일본 화단 분위기 속에서 고립된 그는 ‘미친여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미국으로 건너감으로써 족쇄가 풀린 그는 뉴욕에서 미니멀리즘적인 화풍으로 도널드 저드, 프랭크 스텔라 등의 관심을 끌었고 브라타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세계 미술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 뒤 행위예술, 조각으로 행동반경을 넓히면서 유명세를 탔다. 센트럴파크, 자유의 여신상 앞, 월가 등에서 히피나 동성애자들의 몸에 땡땡이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땡땡이 그리기는 조각적 변주로 이어졌다. 다리미, 빵틀, 식탁, 국자, 하이힐, 숄더백 등 여성용품을 남성 성기 모양의 주머니로 뒤덮어 남성지배적인 예술사회에 똥침을 날렸다. 1966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불청객으로 참가해 주목할 만한 미술작업을 선보여 일약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나르시스 정원>이라며 반짝이는 플라스틱공 1500개를 늘어놓고 핫도그처럼 1개당 1200리라에 팔았던 것. 경찰 제지로 중단됐지만 전세계 매스컴을 탔다. 상업성을 지향하는 현대 미술의 논리적 귀결을 보여주는 행위예술이었다는 설명이다. 언론을 활용한 프로모션은 앤디 워홀에 버금갈 정도여서 거울을 이용한 <핍쇼> <엔들리스 러브쇼> 등 선정적인 훔쳐보기를 소재로 삼은 것도 있다. 그러나 그물과 땡땡이 무늬는 한결 같이 이어진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977년 신주쿠 세이와 병원에 장기입원해 요양하면서 그 안에서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행위예술은 접고 회화, 판화, 조각, 설치를 중심으로.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아트링크 이경은 대표는 전시하는 <무한그물에 의해 소멸된 비너스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이 작품은 그물망을 입힌 비너스상과 배경이 되는 무한그물 두 가지가 짝으로 된 작품으로, 같은 무한그물 무늬로 인해 비너스상이 소멸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고객들이 <무한그물>만 팔 수 없느냐고 물어오더라는 것. <무한그물>이 아름다워서이기는 하지만 구사마 작품의 진면모가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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