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홀로웨이 바로크 바이올린 리사이틀
"바흐의 작품은 더 있습니다."
아쉬움이 남았을까. 바흐의 '샤콘'을 마지막으로 리사이틀을 마친 홀로웨이는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한 뒤 곧바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 제3번 중 '라르고'를 앙코르로 연주했다. 그의 바이올린 선율에는 리사이틀에 대한 아쉬움과 바흐 음악에 대한 경외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이 리사이틀이 있던 21일은 바흐의 생일이었다. 호암아트홀에서 이날 밤 홀로웨이가 연주한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과 파르티타 제2번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완성도가 높지만, 정작 홀로웨이의 바흐 연주는 기대 수준을 밑돌았다. 인토네이션은 불안했고 표정은 밋밋했으며 실수도 잦았다.
콘서트홀의 음향 여건도 연주효과를 반감시키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호암아트홀의 음향은 건조하고 잔향이 적어 바로크 바이올린의 미세한 뉘앙스를 느끼게 하기에는 힘들었다. 다행히 무대 위에 연주자를 위한 이동식 음향 반사판이 설치되어 음의 전달에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이것이 잔향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홀로웨이는 옛 음악을 그 시대 악기로 연주하는 '원전악기 연주자'이지만, 활을 쓰는 법이나 악구를 분절하는 방식은 현대식 바이올린 주법과 유사했다. 대체로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활의 힘을 빼고 그것을 빨리 움직여 부드럽게 공명하는 음을 만들어내는 데 비해 홀로웨이는 개량된 현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처럼 활을 현에 밀착시켜 단단한 음을 얻어냈다.
그로 인해 톤의 빛깔은 또렷한 편이었으나 활에 힘이 많이 들어가 현의 울림이 적고 섬세한 맛은 부족했다. 또한 습도에 민감한 고악기의 특성 상 잡음 발생이 많았던 것도 이번 연주회의 집중력을 떨어뜨린 원인이 됐다.
홀로웨이의 연주 스타일은 형식미가 있는 바흐의 음악보다도 비버의 '파사칼리아'와 같은 환상곡 풍의 음악에 더 잘 어울렸다. 이 곡은 가톨릭의 묵주 기도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미스터리 소나타' 중 하나로,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변주가 펼쳐져 즉흥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이미 비버의 '미스터리 소나타' 음반으로 명성을 얻은 바 있는 홀로웨이는 비버의 작품에서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했다. 그의 보잉(bowing)은 좀 더 자신감에 넘쳤고 장식음 처리도 맛깔스러웠다. 또한 후반부 첫 곡으로 연주한 텔레만의 환상곡 제10번에서 무곡 풍의 리듬을 살린 경쾌한 연주도 설득력을 얻었다.
홀로웨이의 이번 리사이틀은 콘서트홀의 음향이 고(古)음악 연주회에서 더욱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감케 했다. 개량되지 않은 고(古)악기는 음량이 작고 습도에 민감해 연주 장소 선택이 공연의 성패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홀로웨이의 공연을 기대했던 일부 음악 애호가들은 "음향이 연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연주회란 악기 소리와 홀 음향의 조화이며 음악가와 청중 사이의 소통이다. 좋은 연주와 좋은 청중, 그리고 연주를 돋보이게 하는 콘서트홀이라는 3박자가 잘 맞았을 때 음악회는 비로소 완성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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