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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편집증적 수집광이 숨겨놓은 자기 단서

등록 2008-03-27 19:22

이진용 개인전
이진용 개인전
이진용 개인전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진용 개인전은 지독하게 편집증적인 화가의 자기고백으로 읽힌다. 작가는 책, 가방, 골동품 그림 또는 인물화, 풍경화로써 지적, 정서적 편력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여기저기 말없는 조각들을 늘어놓고 “자~ 내가 누군지 알아맞혀 봐”라며 관객에게 퍼즐놀이를 제안한다.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것은 폭이 7미터 높이가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책탑. 1천권의 책을 쌓은 탑인데, 가까이 들여다 보면 사실적으로 그려진 책등이다. 지금껏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 저서, 학문분야를 제목으로 한다. 로댕, 모네, 모딜리아니, 마르셸 뒤샹, 잭슨 폴록 등 서양화가 틈에 한국의 김홍도, 신윤복이 끼어있다. 대부분 한 권씩이지만 다빈치와 베르메르, 징기스칸은 두 권이다. “나 이런 책을 읽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품이 고색창연한 고서의 형태여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있는 모양새다. 각각의 책에 달린 끈을 당기면 서랍이 열리고 그 안에는 책에 해당하는 각종 자료가 수지 속에 잠겨 있다.

이어지는 작품은 극사실화 <게르하르트 리히터>. 서너 시간 전 면도한 듯한 주인공은 눈과 눈 사이의 찡그림 하며 관객의 뒤쪽에 초점을 맞춘 눈동자 하며 무척 도도하다. 탱화용 올이 무척 가늘어 수염뿌리까지 보인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는 리히터는 다중인격의 무정형 화가. 극사실에서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그림을 그렸다. 이진용 작가는 독일을 여행하다 그의 전시회를 보고 존경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 내건 작품들 역시 정물, 풍경, 극사실에 걸쳐 있으며 회화에서 조각과 설치를 넘나들고 있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유럽의 어느 도시일 법한 비내리는 역. 고층빌딩 사이 고가철로에서 스쳐지나가는 열차. 다가오는 열차 위에 부서지는 빗줄기와 멀어지는 열차의 꽁무니를 흐리는 빗줄기가 대조를 이룬다. 고가철로 아래 우산을 쓴 두 사람이 인연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간다. 어설픈 신파와 꽉 죈 이성의 경계선에서 빗줄기와 침목과 고층빌딩의 창문이 집요할 정도로 규칙적이다.

작가의 집요함은 타이프라이터의 활판, 세자르 초상의 턱수염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종이떡으로 만든 극사실 가방에서 정점을 이룬다. 하지만 자신의 집요함이 못마땅한 또다른 자아는 “나 꼭 그런 사람은 아니야”라며, 그림의 한켠에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여백판을 붙여두었다.

“당신~ 딱 걸렸어” 하면서 흘흘 웃는 작가가 전시장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만 같다. 5월18일까지. (041)551-5100.

천안/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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