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독>(1956)
[세상을 바꾼 노래]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독>(1956)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독>(1956)
1956년 초여름 어느 날, 소년 검프는 읍내에 나갔다가 가게 진열창에 놓인 티비를 통해 낯익은 사람의 모습을 본다. “아이들이 볼 게 아니”라며 어머니가 그의 눈을 가렸지만, 티비 속의 젊은이가 자신을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소년은 이미 알고 있다. 티비 속 청년의 이름은 엘비스 프레슬리로 밝혀진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의 도입부 한 장면이다. 미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질료 삼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검프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조우하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포레스트 검프는 물론 가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그 저녁의 일화는 전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실제 사건이었다. 정확히는 1956년 6월5일의 일이었고, 당대의 인기 프로그램 <밀튼 벌 쇼>의 방송 내용이었다. 4천만 명이 시청한 이 방송은 경련하듯 하반신을 흔들어대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을 송출한 대가로 곧장 스캔들에 휘말렸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저명한 매체비평가 벤 그로스는 엘비스가 “선정적이고 상스러우며, 동물적 쾌락으로 채색된 구경거리를 전시했다”고까지 썼다. 이후 프레슬리에게는 ‘엘비스 더 펠비스’(골반을 흔드는 엘비스)라는 낙인이 찍혔고, 더불어 그날 방송된 <하운드 독>은 역사상 가장 떠들썩하게 등장한 노래로 기록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하운드 독>을 둘러싼 섹슈얼리티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4주 후 방영된 <스티브 앨런 쇼>는 엘비스에게 점잖은 턱시도를 입혔고,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는 엘비스의 상반신만을 찍어 방송했다. 인기는 사되 논란은 피하자는 방송사의 고육책이었지만 기성세대의 반발과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로큰롤에 대한 반감의 표출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성 모럴의 급변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었다. 그 기저에는 두 편의 킨제이 보고서-남성편(1948)과 여성편(1953)이 발간되고, <플레이보이>(1953) 등 성인잡지들이 창간되면서 성에 관한 프로테스탄트적 믿음을 뒤흔든 50년대의 사회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성의 권위는 로큰롤 특히, 스타로 부상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통해 불온한 성의식이 확산될 것이라는 판단에 패닉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하운드 독>을 음악으로 평가했다. <하운드 독>은 대중음악계 최고의 송라이팅 콤비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리 리버와 마이크 스톨러가 만든 노래다. 흑인 여성 블루스 가수 빅 마마 손튼이 발표하여 이미 1952년 리듬 앤 블루스 차트 상위권에 올랐던 이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통해 불멸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1956년 7월13일 발표된 엘비스 버전의 <하운드 독>은 무려 11주 동안이나 팝 차트 정상을 지켰는데, 1992년 보이즈 투 멘의 <엔드 오브 더 로드>가 13주 연속 1위의 신기록을 수립하기 전까지, 무려 36년 동안이나 빌보드의 최장기록으로 남았던 것이다.
<하운드 독>에 얽힌 스캔들은 이제 구시대의 해프닝으로 퇴색했다. 하지만 몰입상승이 초래하는 판단착오에 대한 우화로서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의 표현처럼, “비범하게 평범한 청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남긴 유산 가운데 하나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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