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남사당의 하늘’
[리뷰] 연극 ‘남사당의 하늘’
한국 연극 100주년을 기념하는 첫 행사가 막을 올렸다. 극단 미추의 <남사당의 하늘>(윤대성 작, 손진책 연출). 1993년 초연 당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모든 것이 바삐 바뀌는 디지털 왕국 대한민국에서 십여 년이 지나서도 작품의 생명력과 감흥이 유지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이겼다. ‘안성 먹뱅이 남사당패 바우덕이’의 삶에서 소재를 취한 유랑연예인들의 소박한 삶, 버나를 돌리고 풍물을 치며 줄을 타고 재주를 피우는 남사당의 삶과 아날로그적 기예가 잠시도 지루함을 찾지 못하고 텔레비전 리모컨이나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는 관객을 사로잡은 것이다.
초연과 재연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작진들은 초연 공연의 기본 문법을 고수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것은 이 작품의 기본정신이기도 하다. 새로운 문화가 물밀듯 들어오던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남사당의 하늘>은 화려한 변화와 속도에도 지켜야 할 전통과 광대정신을 모색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무대장치만 중극장 규모의 아르코 대극장에 맞추어 소박한 경사무대로 대체되었을 뿐 남사당패를 고증하려는 연출의 고집이나 학처럼 종이꽃이 흩뿌려진 서정적인 이미지와 회전무대의 사용도 여전했다. 수십명의 배우들이 남사당패의 기예를 몸으로 연출하는 시각적 장관에서 심지어 20대의 바우덕이를 소화할 연령대가 아니건만(!) 여전히 바우덕이로 캐스팅된 김성녀에 이르기까지, 안정감 있고 스케일 큰 과거의 공연이 무리 없이 재현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공연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50명에 달하는 배우들이 만들어낸 앙상블의 힘이다. 젊은 감수성이나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는 작은 드라마만 범람하는 최근의 연극계에서 대사 몇마디 없더라도 고른 기량을 가진 수십명의 배우가 무대를 꽉 채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들 모두가 남사당패의 현현인 듯 무대 위의 그 무수한 무리들은 단순한 물량주의를 넘어 존재 그 자체만으로 작품의 주제인 광대 정신을 부각시켰고, 공연의 원래 취지인 한국 연극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면서 묘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한국 연극계는 <남사당의 하늘> 이후에도 여러 가지 공연과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차후에 진행될 행사와 공연 역시 졸속이 아니라 버금가기를 기대한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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