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태 개인전
서정태 개인전
“인물이 이티를 닮았네요?” 눈치없는 물음에 작가는 얼굴을 붉혔다. 커다란 눈망울, 약간 늘어진 눈물주머니, 기다란 손가락…. 영락없이 작가를 닮았다. 개인전(5월2일까지)을 여는 선화랑(02-734-0458)에서 만난 서정태 작가는 인물화를 하다 보면 작중 인물과 자신이 닮아간다고 말했다. 마마를 앓은 듯 거칠거칠한 표면질감이 특징적이다. 세 겹 닥지에 아교와 호분을 여러 차례 올린 뒤 물을 뿌려 잘게 구긴 다음 적절히 당겨서 얻어낸 ‘서정태표’ 장지다.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짬만 나면 그 일을 한다. 그 위에다 탱화용 진채로 주름이 그득한 인물을 그렸으니 해풍에 시달린 동해안 어부로 제격이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은 작가와는 반대로 점점 주름을 펴가고, 귀를 떨어뜨리면서 못생긴 북한강 조약돌처럼 역삼각으로 굳어졌다. 작중 인물들은 암수 한 몸처럼 찰싹 들러붙어 있거나, 혼자 있는 때도 나팔관, 정자 무늬를 배경으로 한 탓에 매우 관능적이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맨드라미나 덜핀 꽃망울이 요상스럽고, 기하 분할이라고 우기는 배경조차 뜯어보면 굴곡진 여체나 특정 신체 부위를 떠올리게 한다. “굳이 설명을 들으려 말고 자기 느낌을 따르라”는 작가의 말은 은근짜 눅진한 느낌을 관객한테 떠넘기려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순전히 그렇지도 않은 것은 중성적인 인물들의 표정에다 무언가 말을 하는 듯한 손 때문이다. 선병질적으로 고불고불한 손은 턱을 괴거나 작품 밖을 가리킨다. 밤을 나타내는 기호라고 말하는 부엉이나 늑대, 자웅동체 옆 ‘죽은 새’를 껴안은 소년은 푸른 배경과 함께 작품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거기에 오방색 조각보, 무당의 대잡이나무라니…. 그런 탓에 그의 그림은 ‘보기’ 아닌 ‘읽기’를 해야 한다. 곳곳에 숨어있는 민화적 기호들을 따라가면 불안한 현대인의 자화상이 도드라진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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