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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로큰롤의 ‘상식’을 깨다

등록 2008-04-10 22:26

버디 홀리의 <댓 윌 비 더 데이>(1957년)
버디 홀리의 <댓 윌 비 더 데이>(1957년)
[세상을 바꾼 노래] 버디 홀리의 <댓 윌 비 더 데이>(1957년)
돈 맥클린의 노래 <아메리칸 파이>(1971)는 1959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기간 미국의 사회와 문화를 훑어낸 서사시다. 여기서 맥클린은 ‘혼돈의 60년대’를 회의하고 ‘순수의 50년대’를 추억하는데, 버디 홀리의 죽음을 그 시대적 경계의 분수령으로 간주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아주 오래 전”의 사건을 되새기며 그는, 버디 홀리가 세상을 떠난 그날 음악도 함께 죽었다고 노래했다.

버디 홀리는 1959년 2월3일, 순회공연을 위해 임대한 경비행기가 이륙 직후 추락하면서 현장에서 사망했다. 홀리와 동승했던 리치 발렌스와 빅 바퍼까지, 세 사람의 로큰롤 스타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리틀 리처드의 은퇴선언(1957), 엘비스 프레슬리의 군입대(1958)에 이어 발생한 이 사건은 당사자들의 개인적 불행을 넘어 로큰롤 1세대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이 되고 말았다. “음악이 죽은 날”이라는 돈 맥클린의 언명이, 비극적 역사와 낭만적 신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세워진 로큰롤의 묘비명이 되어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된 이유다.

불과 2년 남짓한 기간을 활동했을 뿐인 버디 홀리(1936~1959)에게 그토록 막대한 함의가 부여된 까닭은 그의 특별한 존재감에 연유한다. 무엇보다 그는 최초의 백인 로큰롤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시한 동시대의 스타들이 전문 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받거나 흑인 뮤지션들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데 치중했던 것에 반해, 홀리는 로큰롤의 문법을 온전히 체화하여 새롭게 변용시켰던 것이다. ‘백인 로큰롤’으로서 그의 음악적 방법론은 비틀스에게도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1964년,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비틀스의 첫 번째 미국방문에서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존 레넌은 “이곳이 버디 홀리가 섰던 그 무대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졌을 정도다. 외모에서도 버디 홀리의 독특함은 두드러진다. 그는 안경을 착용한 최초의 록 스타였다. 후광효과에 따른 선입견을 무용지물로 만든 그의 이미지는 로큰롤 최초의 반영웅적 표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댓 윌 비 더 데이>는 버디 홀리의 등장을 알린 첫 번째 히트곡이었다. 존 포드 감독의 수정주의 웨스턴 걸작 <추적자>(1956)에서 주인공 존 웨인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을 제목으로 삼은 이 노래는 미국과 영국의 히트차트 정상을 나란히 석권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딸꾹질을 하는 듯한 특유의 창법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효했던 성공 요인은 노래 자체의 동시대성에 있었다. 타고난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자질에 더해, 버디 홀리는 로큰롤의 수용자 집단인 청소년들의 눈높이에서 소재를 찾고 가사를 만듦으로써 공감대의 울림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비평가 말콤 존스는 “모든 이들이 대세를 추종하고 있을 때, 버디 홀리는 눈부신 ‘최초’의 기록들을 작성했다”고 쓴 바 있다. 사실이 그랬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 밴드 편성의 방식, 음악작법의 혁신,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의 사용과 안경의 착용까지 모든 것이 최초였다. 거기에 더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뮤지션으로서도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는 점은 운명의 아이러니일 터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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