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소리도둑’
뮤지컬 ‘소리도둑’
아직은 난삽하다. 그러나 봄물 오르는 여린 잎을 볼 때처럼 딱딱한 마음을 다정하게 녹이는 뭉클한 순간도 존재한다.
연출가 조광화와 쇼틱커뮤니케이션즈가 만든 가족 뮤지컬 <소리도둑>은 조광화의 기존 작품과는 경향이 다르다. 정극을 만들 때면 세상에 잔뜩 독이 올라있던 그의 과격한 경향은 지난해 뮤지컬 <천사의 발톱>을 만들 때도 어김없이 드러나 뮤지컬의 일반적 공식인 말랑말랑함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혼쭐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족이 함께 볼 뮤지컬을 염두에 둔 탓인지 <소리도둑>에 와서 조광화가 비로소 상처의 치유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은 연주회 도중 감전사한 가수 아버지에 대한 충격으로 말문을 닫아 걸은 아침이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침은 역시 노래를 불렀으나 이제 더 이상은 노래하려 들지 않는 침울한 엄마와 외가가 있는 시골로 내려오고, 촌스럽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시골 사람과 자연을 만나면서 노래를 되찾고 치유된다는 이야기다.
작품을 쓰고 연출한 조광화는 주인공 소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무대를 만화처럼 만들어나간다. 둥근 산봉우리와 조그마한 집 그러나 큼지막한 반딧불과 꿈틀거리며 피어나는 꽃으로 장식한 장난스런 무대(무대 디자이너 손호성), 의도적으로 무늬가 많이 들어간 옷에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뒤집어 쓴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바보와 아인슈타인을 닮은 괴팍한 의사 캐릭터, 사라진 아침이를 찾는 전보문 같고 동요 같은 김혜성의 귀여운 노래 등등.
최근 우리 사회를 경악감으로 들끓게 했던 아동 유괴나 살인사건을 환기할 때 <소리도둑>의 순정만화 같은 재미와 시각은 다소 공허하기도 하다. 그러나 로맨스 외에는 이야기할 꺼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최근 공연계의 소재 빈곤을 감안할 때, 인간의 상처를 위로하려는 작품의 절실함은 감동이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 병으로 바보가 된 치린이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의사를 껴안고 위로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타인을 경계하고 미워하며 살았던 삶의 묵은 때가 세제로 삶아 빤 듯 문득 순결해지는 순간!
문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아침이라는 점이다. 클라이막스라 할만한 정서적 울림이 주인공이 아닌 바보 치린이 같은 조연의 상황에서 표출되고 정작 아침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뻔하다는 것, 그런데도 상황은 인위적이고 난삽하게 전개되어서 강약의 조절이나 초점의 분배에서 어디가 균형감을 상실한 느낌이다. 한 번 더 정제해주기 바란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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