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사위에 실려오는 ‘권번 예기’
서울시무용단 창작무용극 ‘경성, 1930’
일제강점기 이 땅에는 권번 또는 검번, 권반이라는 독특한 기생조합이 있었다. 권번에 기적을 올린 기생들은 술과 웃음만을 파는 일반 기생들과 달리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며 시·화·가·무·악 등 예능뿐만 아니라 교양과 예의까지 갖췄다. 오늘날로 치면 권번은 여성들의 전통 예능 교육기관이었고, 권번 기생은 여류 명인이자 예술가였다. 권번에서 가르치던 춤은 오늘날의 전통춤으로 이어졌으며, 현재 인간문화재에도 권번 출신이 있지만 세간의 선입견이 두려워 밝히지 못하는 처지다.
서울시무용단(단장 임이조)이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권번 예기들의 예술과 사랑, 애환어린 삶을 그린 창작무용극 <경성, 1930>을 24~25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세종문화회관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씨의 책 <노름마치>(2007)에 소개된 권번 예기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일제치하 격변기에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 춤의 원형을 지키려던 예술인의 삶을 조명하려는 것이 공연의 취지이다.
어려서 종로의 한 권번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거쳐 예인의 경지에 올라선 산홍, 권번 출신으로 신식 사교클럽 무랑루즈를 운영하는 신여성 금향, 독립운동단체인 황토단의 단원으로 일본군 고위장교를 저격한 뒤 쫓기는 대학생 형철 등 세 남녀의 만남과 사랑, 이별 등이 줄거리다. 공연의 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떠나보내며 산홍이 추는 진혼무이다. 또한 권번 예기들의 혹독한 전통춤 수련 과정과 사교클럽 댄스홀의 엔카, 스윙재즈 등 음악과 신식 춤, 1930년대 종로거리의 화신백화점, 인력거, 슈샤인 보이, 약장사 등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중진 한국무용가 임이조 서울시무용단 단장이 예술감독과 안무를 맡았고,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이 연출했다. 서울시무용단원 나선주, 김승애, 신동엽이 주인공을 맡고, 김승덕(극단 쟁이마을 대표), 남상일(국립창극단원), 박애리 (〃), 원완철(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수석단원) 등이 찬조출연한다. (02)399-1114~6.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서울시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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