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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에로틱 청소기, 몸을 탐닉하다

등록 2008-04-24 18:07수정 2008-04-24 20:22

<금으로 만든 인형>
<금으로 만든 인형>
주목할 작품이 나타났다. 몸과 사물의 만남을 주선한 정금형의 <금으로 만든 인형>. 그동안 변방연극제나 춘천마임축제에서 발표했던 소품들을 ‘오르가슴’이라는 코드로 엮어 총정리한 작품이다. 오르가슴이라는 도발적인 코드나 자신의 이름을 장난스럽게 확장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젊은 예술가 특유의 재치, 또 대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눈부시다.

오르가슴에 집착하는 방법으로 정금형이 제시하는 이야기는 여섯 가지다. 푸른 옷에 소형 범선을 부착한 스펙터클 대서사시, 팔꿈치에 가면을 부착하고 발이 된 손가락으로 종종거리는 문어인간 트리스탄, 셔츠를 다리에 꿰고 그 목에 가면을 부착해 얼굴이 두 개인 호모호모, 가면들과의 삼각관계를 연출하는 이졸데, 발탈을 부착하고 마네킹을 애무하는 피그말리온, 구렁이처럼 구불텅거리며 먼지 대신 여인의 몸을 탐닉하는 진공청소기.

몸과 사물을 결합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것은 아주 기묘한 결합(섹스)이고 전복이다. 살아 있는 몸과 생명이 없는 사물이 연결되자, 인간의 몸은 인간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죽은 사물은 마술이라도 걸린 듯 생명력을 분출하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을 포기하고 ‘인형 되기’를 선택한 것처럼, 그래서 익숙한 인간의 몸이 가진 또다른 지평을 극한까지 탐색하기로 작정한 듯 정금형은 무대에서 자신을 지워내며 사물과 함께한다. 그 시도가 얼마나 철저한지 관객과 눈이 마주쳐도 사물과 결합한 몸의 부분을 제외하곤 마네킹 같고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오르가슴이 일종의 망아상태라면, 사물과의 섹스를 통해 정금형은 공연 내내 인간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황홀하되 섬뜩한 오르가슴에 도달한 것일까.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장점은 밀도다. 음악이나 아름다운 몸짓 같은 장식에 의지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최소의 본질과 승부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역시 음악 없이 생명의 역사를 몸으로 보여주었던 자비에르 르로이의 <끝나지 않은 자아>와 상통하는 지점도 있지만,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트렌드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이유 없이 서로 닮아가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정금형만의 고유한 철학과 개성을 확보했다.

<금으로 만든 인형>은 올해 3회를 맞이하는 피지컬씨어터페스티벌의 참가작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소박한 규모의 축제인데, 그 가난함 속에서 황금 같은 작품을 발견하는 감흥이 특별하다. 문제는 참가작의 수준이 고르지는 않다는 것. 의미 있는 축제가 더욱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 안배에 조금 더 신경써주기 바란다. 축제는 4월27일까지.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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