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악 뮤지컬’ 뜻밖이야
진화된 화성·신선한 리듬 선사
‘시간을 파는 남자’ ‘세상에서 가장…’ 등 전통소리·춤사위 접목
최근 우리의 전통 국악을 뮤지컬에 접목시킨 ‘국악뮤지컬’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 뮤지컬의 공연양식에 우리 고유의 음악인 판소리, 민요, 국악가요 등과 전통 춤사위의 결합을 꾀한 새로운 공연양식으로, 젊은 국악인들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적극적인 시도로 읽힌다.
국악뮤지컬 전문극단 ‘타루’의 <시간을 파는 남자>(4월4일~5월4일 문화일보홀·사진)와 한국창극원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3월21일~5월12일 소극장 창덕궁), 프로젝트그룹 ‘판소리만들기 자’의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5월9~25일 의정부예술의전당), 극단 ‘외치는 소리’의 <공작새의 황금깃털 이야기>(4월8~27일 부평 코스모스아트홀)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에 앞서 ‘한국전통문화예술단 소리나루’의 <러브 인 아시아>(4월19~20일)와 극단 ‘예성’의 <피노키오>(4월12~13일), 극단 ‘판’의 <굿모닝 배뱅이>(1월3일~3월30일) 등이 국악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국악뮤지컬은 춘향, 심청, 황진이 등 전통적인 소재를 전통음악인 판소리로 극화한 창극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국악뮤지컬은 현대적인 소재와 이야기에다 판소리뿐 아니라 민요, 정가, 국악가요 등과 춤, 연기 등 종합적인 연희양식이 공연 안으로 들어와 훨씬 대중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전통음악에 바탕을 두되 훨씬 진화한 화성과 리듬의 음악은 국악 공연이 지루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다.
타루의 <시간을 파는 남자>(연출 민경준)는 바쁜 시간과 빚에 쫓기는 현대 소시민의 일탈을 풍자적으로 그린 스페인 작가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의 동명 소설을 판소리와 국악가요, 전통 춤사위로 풀어냈다. 아카펠라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의 작곡으로 널리 알려진 노선락이 판소리와 국악을 바탕으로 곡을 만들었다. 가야금과 북, 장구, 해금 등 11종류 전통악기와 콘트라베이스, 일렉트릭베이스, 드럼 등 12종류 서양악기를 결합하는 실험을 펼쳐 판소리의 맛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정서를 입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작 노희경, 연출 박종철)은 1997년 문화방송 4부작 특집드라마로 방영돼 호평을 받았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무대로 옮겼다. 말기암 환자로 죽어가는 한 주부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으로, 창극배우들의 구성진 소리와 전문 연극배우들의 연기, 라이브 국악연주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연출 남인우)는 젊은 소리꾼 이자람이 서사극 이론으로 잘 알려진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1941)의 이야기를 한국 문화와 정서에 맞게 각색하고 음악을 만들었다. 브레히트 서사극의 해설자로 나오는 소리꾼과 함께 판소리와 연기를 같이 하는 광대, 국악 라이브 연주를 맡은 악사 등이 모두 등장하는 등 국악과 서양극의 만남을 꾀했다. 지난해 11월 정동극장에 첫선을 보여 많은 호평을 받아 오는 5월 제7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도 초청받았다. 이자람씨는 “서양 극의 호흡, 몸짓과는 다른 우리 고유의 극 양식이 모두 녹아 있는 것이 판소리여서 최근 젊은 연출가들이 판소리에 집중하고 욕심을 내는 것 같다”며 “서양 뮤지컬에 맞서는 한국 고유의 승부수는 판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씨는 “뮤지컬이 공연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이때 젊은 국악인들의 새로운 실험이 국악뮤지컬”이라며 “일본의 경우 서양 뮤지컬에 일본식 음악을 결합한 여성 뮤지컬 다카라즈카가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볼 때 국악뮤지컬의 발전 가능성은 밝다”고 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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