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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성과 속 경계 허문 ‘솔’의 탄생

등록 2008-04-24 20:32

레이 찰스의 <왓드 아이 세이>(1959년)
레이 찰스의 <왓드 아이 세이>(1959년)
세상을 바꾼 노래
■ 레이 찰스의 <왓드 아이 세이>(1959년)

뉴 저널리즘의 선도적 작가 노먼 메일러는 1957년, 좌파 계간지 <디센트>에 흑인문화의 역동성이 백인 주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에세이를 게재했다. 여기서 메일러가 그 활력의 핵심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 흑인의 음악과 섹슈얼리티”였다. 그러나 흑백 통합에 동조하는 개방적 시각에도 그의 주장은 시대의 급변을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당시 서른다섯 살이었던 메일러의 인식에 흑인음악은 여전히 재즈 시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과 섹슈얼리티의 관계가 성과 속의 경계마저 허물고 있던 상황을 따라잡기에 그는 이미 기성이었다. 메일러는 레이 찰스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레이 찰스(1930~2004)는 54년 발표한 <아이 갓 어 우먼>에서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를 결합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담하게도 종교음악의 선율을 빌려다 관능적 사랑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리듬 앤 가스펠’이라고 불렸던 찰스의 음악은 <아이 갓 어 우먼>의 모티프에서 시작하여 <왓드 아이 세이>의 사운드로 완성되었고, 6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솔의 탄생이다.

흑인 뮤지션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솔 음악의 핵심은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스펠의 전통은 바로 그 느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솔 창법의 근간이 되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노랫말이 종교적 메시지와 세속적 서사로 구분된다는 점이었는데, 레이 찰스가 <왓드 아이 세이>에서 들려준 도발적 시도는 바로 그 명백한 예시다.

<왓드 아이 세이>에서 레이 찰스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남녀간의 애정을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교음(嬌音)과 기성(奇聲)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보수층의 비난과 청년층의 열광을 동시에 받았다. 비평가 넬슨 조지는 찰스가 “종교적 각성의 환희와 육체적 충족의 쾌락을 동일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며, 그것을 통해 “토요일 밤의 죄인과 일요일 아침의 교인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현실”을 각성케 했다고 평했다.

<왓드 아이 세이>의 폭로적 솔직함은 당시로서 전례가 없는 형식과 사운드를 통해 증폭되었다. 이 곡은 기승전결이 희박한 즉흥적 연주의 다층구조로 ‘모자이크’되었는데, 6분30초에 이르는 연주시간 때문에 한 면에 3분 남짓한 싱글 레코드의 수록 한계에 맞춰 두 파트로 음반 앞뒤에 나뉘어 담겼다. 게다가 일렉트릭 피아노라는 (당시로선) 생경한 악기를 전면에 사용했고, 스튜디오 녹음임에도 뮤지션과 관객이 얘기를 주고받는 듯한 설정 부분을 삽입하기도 했던 것이다.

<왓드 아이 세이>의 혁신은 우연의 산물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성과다. 제이미 폭스에게 아카데미 주연상을 안겨준 찰스의 전기영화 <레이>(2004)가 잘 보여주고 있다시피, 이 노래는 예정보다 공연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시간을 때우려고 즉석에서 만들어낸 연주였다. 59년 피츠버그 교외의 브라운즈빌에서 펼쳐졌던 공연을 재현한 그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솔의 탄생”을 경험하는 간접 기회를 제공했던 셈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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