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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낚인 공간에 퍼부은 맹랑한 조롱과 욕망

등록 2008-04-24 20:37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여는 춘계예술대전에는 작품이 전시됐다기보다는 진열돼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지하1, 2층 2055㎡넓이의 공간에 1026점의 작품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당선작과 낙선작을 함께 건 탓에 작품의 의도보다는 작가의 욕망이 한층 도드라져 보인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여는 춘계예술대전에는 작품이 전시됐다기보다는 진열돼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지하1, 2층 2055㎡넓이의 공간에 1026점의 작품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당선작과 낙선작을 함께 건 탓에 작품의 의도보다는 작가의 욕망이 한층 도드라져 보인다.
코리아나미술관 ‘춘계예술대전’

서울 압구정동의 유명짜한 코리아나미술관이 졸업반 대학생한테 제대로 낚였다. 넓이 2055㎡의 전시 공간 전부를 공짜로 내주고도 모자라 4500만원까지 대주며 전시회를 지원했다. 무당집 같은 오방색 천의 작가 최정화씨도 함께 낚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전시감독으로 쓰도록 내줬다. 낚은 자나 낚인 자나 모두 낄낄거리며 좋아들 하니 웬일인가. 1950~60년대에나 어울릴 법한 이름의 ‘춘계예술대전’(6월8일까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공모전 당선·낙선작 짬뽕
빽빽 왁왁 낄낄 뒤죽박죽
전시장 자체가 작품덩어리

■ 수두룩 빽빽 전시장 =박생광 개인전 때 65점을 건 적이 있는 이 미술관에는 놀라지 마시라, 현재 1026점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단체전 때 가끔 쓰던 가벽을 8개나 세워 바닥에서 천장까지 주렁주렁 수두룩 빽빽 매달고, 붙이고, 내걸었다. 일일이 작품 제목과 작가명을 쓸 수 없어 대략의 위치를 번호로 매겨 작은 종이에 옮긴 뒤 바닥에 붙였다. 하지만 있으나마나고 구태여 찾아보는 이도 거의 없다. 왁왁, 꽥꽥, 중얼중얼, 조곤조곤. 작품들이 내는 각양의 소리들이 서로 부딪쳐 제목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거기에다 좁은 통로에서 이웃 관람객 궁둥이에 닿을세라 무척 조심해야 한다.

이 전시는 2월 말 열흘가량 실시한 공모전에 쏟아져 들어온 작품들. 작가, 작가 지망생, 요리 모형 만드는 이, 철도청 직원, 청자 장인 등 네살배기부터 예순일곱 노인까지 순수회화에서 입시미술, 사진, 비디오아트에 걸쳐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밀려들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포트폴리오나 참가비 없이 작품만 내면 될뿐더러 잘하면 당선되어 등단할 수 있고 설령 떨어져도 전시까지 해준다니 밑져야 본전이었기 때문. ‘다양한 사람, 다양한 작품’은 듣기 좋은 말이고 뒤죽박죽인데다 역량과 욕망의 편차가 무척 크다.


■ 앙큼 발칙 아이디어 =이렇게 미술을 향한 거대한 욕구를 한 공간에 우그려 넣은 장본인은 미학과 4학년생인 신빛나리씨. 작가 최정화씨는 “4500만원에 아이디어를 샀다”는 표현을 썼다. 급조한 대학생 위주의 드림팀 20여 명이 노가다를 뛰었다. 신씨는 고고한 척 하는 미술과, 고고한 척하는 미술판이 역겨웠다. 미술이 별거더냐, 미술판이 별거더냐, 엿을 실컷 먹이고, 스스로 역겨운 짓을 골라서 함으로써 십자가를 지고 싶었다. 전시공간도 욕망의 크기에 따라 분양하거나 아예 작품을 쌓아둘 생각도 했다. 하지만 분양을 포기하면서 “유례가 없는, 형식파괴적 전시가 됐다”고 말했다.

정작 가장 크게 낚인 사람들은 출품자들. 하지만 지난 18일 미술관 회의실에 모인 10여 명의 예비작가들은 예상과 달리 당락과 무관하게 통이 컸다. 작품과 작가, 관객한테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전시라는 의견은 단 한사람. 빽빽해서 멀미날 것 같았다는 의견도 작은 목소리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전시장이 하나의 커다란 작품처럼 보였다, 고정관념을 깬 의미있는 전시였다며 추켜세웠다. 고교생으로 머리카락 수영복을 출품한 금빛나양은 작품명과 이름을 뺌으로써 오히려 원작에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 관대함과 구멍이 소화한 젊음 =뜻밖의 성과에는 미술관 쪽의 관대함이 큰 몫을 했다. 유승희 부관장은 “젊은이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치도록 배려했다”면서 ‘빼곡전시’가 외국에서는 이미 진부하지만 우리도 한번쯤은 거쳐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바탕 축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기획단계에서 심사까지 간여했고 초대작가로도 참여한 천정원씨는 “공모전 광고가 나간 뒤 맨 처음에 문의하고 일착으로 출품하신 분이 60대 아마추어 사진가였다”면서 “그 따뜻한 마음을 받고부터 원래의 삐딱한 의도는 완전히 잊었다”고 말했다.

구멍이 보이는 기획전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옹색하게 병렬된 작품들은 작중의 의도보다는 욕망 또는 수준의 차이로서 부각된다. 고물상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탓이다. 전위적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뽑은 개념적인 당선작들 사이로 60대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진중한 작품이 특별상으로 끼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헌데 주최 쪽에서 무심했던 한가지. ‘빽빽전시’를 기꺼이 감수할 사람들에게는 무방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출품자한테는 무척 당혹스러울 듯하다. 애초부터 전시방식과 권한은 주최 쪽에 있다고 명시하든지, 주최 쪽의 의도에 단서를 달지 않을 정도로 길들여진 집단으로 한정하든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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